23 December, 2009

Iphone appls. tiltshift generator

0.99$ - iphone application, tiltshift generator makes pictures like taken by tiltshift lens. its able to apply vignetting effect, contrast/saturation control and radial, linear blur with angle control.
these are test samples. the first is the original, the second is radial blur, and the last is linear blur along the river.
its taken in Heidelberg, 2004. maybe by EOS-1hs, 28-70L.


22 December, 2009

신뢰와 살인율

과학 기사 중에 재미있는 기사가 났다. 랜돌프 로쓰라는 사람이 지난 400년간의 유렵과 미국의 살인율에 대해 조사를 한 것이다. 역시나 관심이 갔던 것은 가난, 실업율, 강한 처벌이나 경찰력의 증대가 살인율에 영향을 주지못한 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과연?
첫째가 정부가 안정되어 있고, 법적시스템이 공정하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관료들을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 셋째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넷째가 어느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만족스럽고 비폭력적인 존경을 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한다. 가난이나 실업율, 또는 더 큰 처벌, 더 많은 경찰이 살인율을 낮추지 못한 것이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신문에는 이념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하고, 사람들간의 신뢰가 하락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유럽의 경우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정부가 말하는 법치라는 식의 휘어잡기로는 잡힐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로쓰 교수는 덧붙인다.
사람들이 사회와 교감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할 때 살인율이 높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대통령도 한번 사회가 통제 불능이 되면 나라를 통합하지 못한다.
의미심장하다. 아무래도 혁명때의 이야기이겠지만 지금이라도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16 December, 2009

매장 디스플레이 광고

티브이나 포스터가 아닌 디스플레이 광고가 이쯤되면 거의 환상 아닌가?

14 December, 2009

앤디 워홀

앤디워홀 전시회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데 몇몇은 싫어하는 사람도 깨나 있는 듯하다. 언젠가 그가 찍었다는(?!)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몇분간 본 적이 있었는데 혁신적인 생각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일생이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몰라도 그의 작품은 참으로 현대 미술답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는 예술로서 대중에게 놀라움을 제시하였으며, 시대에 앞서게 시뮬라크르에 대한 고민도 했다. 예술이 죽었다는 표현은 어느 철학자가 했지만 아무래도 그 말을 하게 한 장본인은 워홀일테다. 그의 어떤 작품이 얼마나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홈페이지에 나온 것으로 보면 실크스크린 작품이 거의 전부이다). 여느 시립미술관의 전시회처럼 유명한 건 한 두 작품뿐일테지만 놀라운 그의 생각을 알 수있을 좋은 기회일 듯 싶다. 핸드폰 쓰는 사람은 엘지티가 아니라면 멤버십 카드가 있으면 2천원이 할인(그래서 만원)된다고 하니 괜찮다.
http://www.warhol.org/ : 이 곳은 앤디워홀 박물관 홈피.

허리를 아무 이유없이 삐끗한 게 거의 두달이 되어간다.
첫째주는 참았고, 토요일마다 갔는데 집앞 한의원을 다니다가 2번 다니고 효과가 거의 없어서(복음 한의원, 도대체 교회 관련된 쪽은 제대로 하는게 없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옮긴 곳에서 첫날 효과가 괜찮아서 3주 다니고 지난 주에 쉬었는데 오늘 아침 옷을 입으려다가 헉! 하면서 침대로 쓰러졌다. 젠장. 또 왔다.
인터넷으로 보니 결국 근골격계 질환으로 자주 오는 이유는 안쓰던 근육을 쓰거나 무리할 경우, 특히 겨울철이 되면 근육이 긴장하여 이런 경우가 많고, 평소의 자세나 행동 패턴에 의한 누적되는 듯한 이야기가 많다.
결국 몸 따뜻이 하고 스트레칭 많이 해야 한단 말씀. 누구 말에는 한번 오기 시작하면 자주 온다고 하니 평소에 운동 많이 하라는 건데 이거 너무 추워서 그만두었던 수영하기도 힘들다. ㅜ.ㅜ
결국 근육이 풀리면 담은 낫는다고 하는데 경험상 2일은 걸렸던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조심히 있어야 할 듯.

08 December, 2009

아이폰 개통, 고장, AS, 교환 등 4일 사용기

토요일에 아이폰을 개통했다.
오랫동안 케이티를 사용하다가 1년 7개월 전 에스케이로 옮기고 나서야 케이티가 쓰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부모님 집이 매가패스를 사용했었는데 땡전 한푼 깍아주지 않다가 옮길 때가 되어서야, 자세히 말하면 당장 끊으라고 말을 하고 나서야 할인이니 어쩌니 선물이니 하는 꼬라지를 봤었지만 그게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개통한 아이폰을 들고 친척댁에 가다가 카메라가 맛간 것을 확인했다.
맨 윗사진은 사진을 찍기 전 보여주는 영상, 두번째는 찍고난 후 저장된 사진, 마지막은 확인하기 위해 찍은 많은 사진이다.
그러니까 자세히 말하면 찍기전에 보여주는 영상은 정상인데 찍고나면 초록색으로 저장이 된다. 사진이 엉망이라 자세히 나오진 않는데 모니터에서 종종 볼수 있는 가로줄 같은 것도 생긴다. 더 웃긴 건 마지막 사진 중간에 있는 지구 사진이다. 프로그램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하드웨어 리셋을 했는데 그냥 바탕화면이 캡쳐되었다. -_-;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MOS에 화상을 저장할 때 보통 RGB 필터가 있고 이를 조합해서 컬러로 저장되는데 Red하고 Blue 필터가 맛간 것 같다. 그러니까 하드웨어 고장으로 생각된다.
자 이제부터 흥미진진한 AS 및 교환 이다.
일요일 개통을 했던 케이티 대리점에 방문했다. 역시나 생각한 대로 잘 알지 못한다. 그건 예상했던 바이니 머라 할 것이 못되지만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꼬락서니가 짜증나게 한다. 우선 대리점에 있던 한명은 자기네에 맡기면 임대폰을 주고 고장확인이 되는 걸 봐서 그 이후에 애플에서 진행한다는 것. 미친새끼들 내가 임대폰 쓸거였으면 이렇게 빨리 아이폰 샀겠나. 아이폰 출시한지 6개월이 넘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을 거다.
둘째 나는 거기서 그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물어보았다. 왜냐. 구입한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제품을 알지도 못하는 인간한테 맡기는 것도 웃기고, 우선 당장 교환을 하지 못한 사실이 짜증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구입하자 마자 카메라가 맛이 갔어도 나는 그걸 들고 집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인 것이 짜증난거다. 다른 사람이 KT 지사에 가면 AS확인을 받을 수 있고 동일 제품으로 교환이 되는데 그 제품이 안좋다고 했다. 남은 부품으로 만들고 고장난거 수리한거 준다나. 그따위 소리는 왜 하는지, 그러니까 나보고 졸라 재수없는 놈이라는 소리인거냐.
셋째. 가장 짜증났던 것인데 이건 두 사람 다 똑같이 한 이야기로 보아 분명 지시를 받은 사항같다.고장이라는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하는 소리가 인터넷 동호회 등에 글을 올리고 진짜 고장인지 확인해보셨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또라이. 아이팟터치에는 카메라가 없지만 아이폰 시스템과 가장 유사한 터치를 2년간 사용했다. 설정자체가 없는 것을 알고 있고, 카메라 어플을 깔기는 커녕 케이블 연결도 하지 않았는데 그따위 소리를 한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1주일이내에는 1:1 100% 교환이다. 그따위거 확인하느라 하루이틀 보냈다가 1주일 보내면 누가 보상해주나.
결국 일요일에는 집에 와서 KT 지점을 방문하고 1:1 교환받을 수 있음을 확인한 다음에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케이티 플라자 및 지사를 검색하고 점심시간 10분전에 회사를 출발 12시 10분에 부천 심곡동 지사에 도착. 갔더니 어떤 안내하시는 아저씨가 아이폰 때문에 오셨냐고 묻길래 그렇다니까 여기서는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 라고는 황당한 소리를 한다. 그래서 정말 안되는거 맞냐. 나는 인터넷으로 여기서 되는거 확인하고 온거다 라고 말을 하자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는 말만 계속 한다. 직원분께 다시 확인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핸폰 파는 케이티 직원인 듯한 사람이 하는 소리가 저기 붙인거 안보이세요. 여기서 아이폰업무 안해요. 요로코롬 말을 했다. 결국 일어서서 나는 인터넷 보고 왔다. 고객센터 안에 에이포 용지 로 아이폰 업무 안한다고 써놓으면 다냐. 기타 등등을 씨부라렸더니 어디선가 아까 그 아저씨가 여기서 가까운 플라자라며 지도를 들고왔는데 씨앙. 인천 부평역. 차로 20분 거리.
결국 12시 30분이 넘어서 주차하고 도착. 다행이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바로 접수 했다.
기기는 바로 바꾸어주었는데 완전한 포장이 된 것이 아닌 그냥 본체만 넣은 누런색 골판지로 된 박스를 스티커 개봉해서 교환해주었다. 다시 개통하는데는 약 10분에서 20분 정도 소요. 또 헛소리 들을까봐 아이튠즈에 연결도 안했더니 옮겨심었던 전화번호가 다 날라갔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어제 저녁 내가 보낸 메세지에 누구냐는 답을 보고 확인했더니 전화하면 발신번호가 뜨는데 메세지는 알수 없음, 혹은 발신자정보없음으로 보내지고 있는 사실 확인. 이것저것 설정을 확인해보니 내 전화번호가 알수 없음으로 나와있다. 이런 씨앙.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것입니까!!!!!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아이폰, 발신정보 없음 검색하였더니 역시나 심카드 리딩문제. 114 전화로 해결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을 잤다. 오늘 아침 114에 전화했다. 마지막으로 좆같은 케이티라고 느낀 사건이다. 상담원에게 이러저러 하니까 해주세요, 그랬더니 지점으로 방문하란다. 한 톤 높여서 졸라 시간 없으삼 그랬더니 목요일 전까지 해결 가능하다는 드립을 친다. 오늘이 화요일, 그러니까 이틀 간 내 문자 메세지 보낼때 내 이름써야하는 비극적인 상황*이다. 어제 점심시간 넘어서 들어온 눈치도 있고해서 한 톤 더 높은 소리로 씨앙 목욜까지는 정상으로 만들어놔! 라면서 전화끊었다. 그랬더니 1시간 후에 전화와서 별일사칠머머머별머머머별을 누르고 설정 들어가서 어쩌구 한다. 그리고 10분 후에 전화준단다. 고대로 따라하고 전화받았더니 이제 정상으로 된다고 한다. 설정 들어가서 보니 내 전화번호가 드디어 뜬다. 와이프에게 확인 메세지 보내고야 난 드디어 제대로 된 아이폰 사용자가 되었다.

역시나 케이티는 쓰발 것들에 돈에 눈멀은 개색들이다.

*내이름을 써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 : 아이폰은 기본 옵션으로 단어 자동완성 기능이 있다. 그러니까 오타를 잡아주는 기능. 작은 키패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오타를 줄여주기 위한 기능. 그러나 내가 내이름을 쓸때 안전성 으로 내이름을 바꿔준다는게 문제!. 결국 설정에서 자동완성기능 해제하고서야 좀 쓸만해짐. 터치를 2년간 썼는데 아이폰은 어렵다.

* 왜 좆같은 케이티 제품을 쓰냐고 묻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으나 난 케이티 제품을 쓴다기 보단 아이폰을 쓰는 것이다. 왜 아이폰빠가 됐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처럼 디자인과 유아이가 좋다라고도 있지만 나름 사회적인 이유도 있다. 아이폰이 성공하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그 이야긴 나중에.

13 November, 2009

바스터즈

간만의 타란티노 영화. 브래드 피트가 없었다면 올해 칸에서 그닥 주목받지 못했을 영화. 하지만 영화는 타란티노의 초기작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장소만 바꾸었을 뿐 비슷한 느낌. 손에 땀이 나게 하는 긴장감. 그리고 허탈한 죽음과 유머.
영화의 표현으로 본다면 나치와 유대인이 나와 서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마치 저수지의 개들과 같다. 그러니까 적어도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 대해 유대인에 대한 어떤, 혹은 나치에 대한 그 어떤 마음을 갖지 말고 그저 신나게 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느낌은 그 어떤 착한 누군가는 아무리 나치가 잘못되어도 야구방망이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고, 죽은 사람의 얼굴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고 생각할만하다. 하지만 머릿가죽으로 벗기는그러한 잔인한 장면 속에 타란티노의 의도가 있다. 그의 인터뷰에서 유대인 친구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너무 신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돌려말해 내가 mb 얼굴에 기관총을 쏘고 국개의원의 머리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그런 상상. 너무 즐겁지 않은가? 그것이 너무나도 유치하기에 영화에서 보더라도 신나는 이야기가 된다.
그야말로 히스토리칼 펄프 픽션. 타란티노의 작품이다.

05 November, 2009

잠 안자는 돌연변이

지난 8월 기사에 따르면 잠을 많이 자는 사람과 적게 자는 사람의 유전자가 다르다고 한다. 그 유전자는 돌연변이이고 돌연변이가 잠을 적게 잔다고 하며 그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한다. 70가족 중 한 가족에게만 발견되었다니 그닥 적은 것은 아닌 듯.
재미있는 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과 잠을 적게 자는 것의 기준이 6시간 정도라는 사실. 앗. 그렇다면 나도 유전자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일어나서 차를 마시는 등 서있기 때문에 조금 자는 것이며, 실제는 8시간 또는 8시간 반의 수면을 우리 몸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사실에 잠을 안재운 동물들이 결국 죽었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잠은 충분히 자는게 정말 중요한 거다.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여튼 중요한 건 잠을 많이 자고 안자고의 문제도 유전자의 문제로 드러났다는 거다.(물론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겠지만) 도킨스에 따르면 돌연변이는 유전자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그를 대비해서 여러 다른 유전자의 인간을 만들어놓는다는 것. 긴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는 인간의 유전자가 우세해지고 아니면 사라지거나 머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는 잠을 많이 자고 활동을 안해야 한다는게 요즘의 내 생각인데, 즉 돌연변이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런데 쥐새끼가 많이 돌연변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우리가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PS. 오늘 기사 중 하나. 방문지 이사가 이사회에서 mbc 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했으니 방송이 편향될거 같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함. 우선 기사에도 그랬듯 민노총은 합법적인 상급단체인데 그래서 어쨌다는거. 둘째는 그렇게 말한 사람의 사고 수준 문제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방송장악하면 장악한 놈들 맘대로 편향된 방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지들이 그렇게 하니까 다른 편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런 놈들 조심해야 한다.

23 October, 2009

미국의 지명들


Big Ugly, West Virginia
Idiotville, Oregon
Sweet Lips, Tennessee
Kissimmee, Florida
Celebration in Florida
Santa Claus in Indiana
Hot Coffee, Mississippi
Monkey's Eyebrow, Arizona
Toad Suck, Arkansas
Deadhorse, Alaska
Happy, Texas
Hell, Michigan


좀 황당하다능...

22 October, 2009

요즘 근황

글을 못 쓴지 깨나 오래전. 다행이 바쁘던 일이 대충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중. 다음주면 잠깐 바쁘다가 11월까지는 바쁠 듯.
요즘은 인터넷할 시간이 없어서 기사도 제목만 보고 클릭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다만 까페느와르가 상영시간이 3시간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제 아니면 보기 힘들 것 같다.

어제는 수학다큐를 보았는데 푸앙카레 추측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해낸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였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중에서 설명한 비유클리드기하학에서 연속적인 공간(Space or shape?)은 8가지 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8가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나는 구, 다른 하나는 도넛 형태, 다른 하나는 도넛이 두개가 합쳐진 8자 모양인 것 까지는 알겠으나 나머지 5가지는 무엇일까. 아무리 검색해도 난 찾아낼 수가 없었다.

머 그렇다.

06 October, 2009

아차차.

추석연휴끝. 바쁜일상다시시작.

1q84 2권을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다가 오늘 주문했다. 책을 집중해서 읽어서인지 생각하는데 달라서인지 반쯤 읽은 상태에서 생각해보니 하루키라는 사람을 알게 되는 느낌이다. 마치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게되듯이. 그래서 지난 포스팅에 스필버그 운운한 비유는 취소.
또하나 최근 소설을 읽지 않으니 너무나 궁금한 건데 다른 소설도 재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 하루키여서일까 소설의 재미를 늦게 안 것일까 궁금.

from Oberwolfach

5시간 전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접경 산골마을인 오버볼파크에서 이 블로그에 접속한 사람은.. 뚜둥~
추석 때 고향안가서 좋은 사람. 부럽..

21 September, 2009

세계의 끝 여자친구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세계가 변했다.
어젯밤 김연수씨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다 보았다.
"고통에 대해서 직접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죠. 소설은 단지 작가가 아는 고통을 이야기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내가 죽음을 예감하는 그 권투선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난 소설로 쓸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읽는 회사 친구가 내게 '왜 넌 책을 많이 보는 건 아닌데 김연수에 열광하냐'라고 물었을 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었다. 위의 인용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같은 욕망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난 권투선수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나의 20대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연수에게 91년과 92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내게도 어느 한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때가 나의 세상이 망가지는 지점인지 새롭게 태어나는 지점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진부한 단어, 소통.
짧지만 내가 김연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바로 이것이다.
ps. 출근하여 소설의 한 문장을 인용하려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검색해보니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순히 멋있는 문장이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해와 다른이의 이해가 그 한 문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18 September, 2009

바쁜 9월.

나이가 먹어가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다. 이번 달 말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자그만치 2개나 겹쳐 있어서 정신이 없다. 지난 포스팅이후 이번 달에는 글쓰지 힘들 것 같았는데 황당한 일이 너무 많다.
첫째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다. 일본 민족학교에 동화책을 전달하고 선행을 베풀던 사람을 사찰했다. 70년대 80년대 간첩만들기가 떠오른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사라졌다고 하던데 붙잡았던 대위의 노트에는 올 1월부터 날짜가 시작된단다.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 정권의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다.
둘째 노동연구원장의 발언. 노동연구원은 국가연구소이다. 그 노동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인간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그따위 인간이 노동연구원장이었으니 이 나라 노동계가 이모양 이꼴이다. 쥐쌕 정부 출범 후 거의 2년이 다되어가는 기간동안 노동계를 죽이기 위한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써댔을까. 세계적으로 쪽팔린 일이며, 이 새끼의 발언을 빗대어 개인적인 소신으로 이런 새끼들은 헌법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셋째 인천공항철도가 철도청에 넘어갔다. 장사안되는 일 그냥 두는 것보다 정부가 운영하는게 낫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과정과 이후의 일일것이다. 특혜중의 특혜로 소문난 공항철도가 철저히 개박살 난 후 그 책임을 그 누구도 묻지 않고 철도청이 싸인을 한 것이다. 당시 관계자는 공항철도 사장 등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다. 개발 시작전 예상한 승객의 단 7%만이 이용하는 공항철도. 그 적자 수준이 엄청나다. 그걸 철도청이 떠안으면 수십배의 승객이 들어올까. 그 적자는 고스란히 철도청이 짊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정부는 철도청이 그 적자수준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민영화한다고 한다. 그 의미는 그냥 들어도 철도청의 민영화다. 이미 적정가격의 60~70%로만 요금으로 받고 정부 지원금을 받는 철도청이다. 왜냐고. 그건 국책사업이니까. 어차피 수익이 나지 않는 철도청에게 수익율 운운한다는 얘기는 적정한 기준으로 정책을 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4대강 사업을 수자원공사가 떠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돈 안쓰고 공기업의 재정적자 악화를 빌미로 민영화. 그리고 어떤 대기업하나가 그걸 잽싸게 잡아채 떼돈 버는 시나리오.
넷째 박원순 희망제작소 소장이 국정원으로부터, 아니 대한민국으로부터 2억원 소송을 당했다. 명예훼손이라는데 명예훼손은 국정원으로부터 당하는 국민이다. 앞뒤가 뒤바뀐 황당 소송으로 후에 길이 남아 티브이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도 나올만한 일이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 나오는 고위공직자 위장전입 등의 도덕성 문제. 이건 솔직히 많이 화가 나는 부분인데 애초 쥐새끼부터 도덕성 문제는 생각도 않았었다. 그리고 2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매 인사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가 나왔던 부분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만 하면 무엇하랴 잘못인지 알면서도 저지르는 수많은 돈많은 새끼들이 나라의 행정을 주무르고 법을 만들고 있다. 전과 14범, 기소 횟수 30번 이상의 쥐새끼가 그들 머리 위에서 괜찮다고 하는 나라니까. 거기에 언론은 똑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대고 있다. 노통 시절에는 죽어도 안된다는 위장전입 등에 대해 너그러워야 한다느니하는 개소리만 지껄여대고 있다. 그건 딴나라당 족속들도 마찬가지 언제나 이중잣대 들이대는 씨박것들 땜에 화딱지가 난다.
국민은 지금 2007년 12월의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 지 뼈속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지금 즐겁다고 희희낙낙하는 것들은 대기업, 뉴또라이, 돈많은 족속들 뿐이다.
내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일천황을 초청한다는 쥐새끼의 머리통에 박수! 짝짝.
ps. 회사 친구와 그 아래 여직원의 마찰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둘 다 따로 떼놓고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 둘이 같이 생활하니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내 주위에 나를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지 돌아보는 계기인 것 같다.

01 September, 2009

배우 장진영 사망

놀란 소식을 접한 건 작년 이맘 때로 기억한다. 배우 장진영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기사였다. 생각해보니 1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사망 기사가 났다.
내가 본 그의 영화는 청연이 마지막이었는데 당시는 내가 필리핀에 있을 때여서 청연에 대한 소란을 알지 못했다. 돌아와 청연을 보고서 느낀 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논란이었다는 일색(日色) 어쩌고 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옛사람을 연기하는 그녀의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고, 과장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2006년에 거북하지 않게 멋졌다. 그래서 싱글즈 보다는 청연의 장진영이 내겐 더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와서야 다시 느끼는 슬픔. 이제 그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옛날 정은임씨가 라디오에서 했던 이야기의 변주. 당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7 August, 2009

욕하기

올해 7월에 재미난 과학기사가 났다. 어느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6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욕을 하는 것이 고통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실험한 것이다.
결과는 "그렇다!"이다. 이 결과는 나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첫째 어렸을 때부터 욕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기사는 그 대답이 된다. 그러니까 선사시절부터 육체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욕을 했을테니까. 뾰족한 돌을 밟아 발이 아플 때 욕한번 시원하게 때려주면 심리적으로 그 고통이 줄었겠지.
그래서 둘째, 현대에도 욕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만 실험했지만 나름대로 확장시켜 정신적인 고통도 줄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건 심리학적인 실험이니까. 회사 휴게실에서 혹은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누구 씹으면서 욕하는 건 정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회식이라는 것이 최근에는 많이 부정적이지만 나름 사람들만 괜찮으면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을 공중파 방송에 내보내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욕을 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데 효과적인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기사에서도 역시나 욕을 많이하는 것은 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필요악이라는 게 나쁘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는 것.
요즘 이 블로그에 욕이 많이 올라오는데 솔직히 mb를 졸라 씹었더니 예전의 감흥이 사라진 것도 사실. 아주 종종 심하게 씹어야겠다.
ps. 실험에서는 손가락을 망치로 때리고 얼음물에 손집에 넣고 기다리게 했다니 이 교수라는 사람 좀 깨는 듯.

20 August, 2009

Kruger National Park

정치 관련 이야기, 내 개인적인 이야기, 영화 이야기 외에 다른 종류의 포스팅을 할까 함. 물론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보다 도움이나 새로운 지식을 줄 수 있는 글 위주로 한 번..

첫번째는 크루거 파크.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먼 나라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나름 시간과 여유가 됐을 때 생각을 한번 해보았던 곳이 아프리카였는데 역시 머리속으로만 상상하고 말 뿐이었다. 얼마전 인터넷을 통해 좀 검색을 했다.
우선 예전에 내가 상상했던 아프리카는 짚차를 타고 다니는 사파리가 첫번째였고, 동물과 어우러진 자연풍광이 두번째였다. 이런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야할 곳은 쵸베(Chobe)파크와 크루거(Kruger)파크이다. 쵸베는 보츠와나에, 크루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다. 침팬지가 좋은 사람은 탄자니아의 곰베(Gombe)파크로 가면 된다. 3개의 국립 공원 모두 비슷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잘 사는 나라인 크루거 파크가 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크루거 파크게 제일 잘 되어 있다. 마음과 시간과 돈만 있다면 한국의 어느 컴퓨터 앞에 앉아 항공권과 숙소 및 스케줄을 정하는 것 모두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도 정보를 거의 크루거 파크의 홈페이지에서 찾았으므로 크루거를 주로 이야기한다.
아프리카의 자연을 상대로 돈을 벌어먹기 때문에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도 있으며, 공원 내에 법적으로 허용된 숙소 장소가 따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Concession 구역에서는 매우 많은 숙소가 있는데 대부분이 고급 빌라이다. 그러니까 태국이나 필리핀의 해변에 호텔이나 빌라가 땅을 사고 장사를 하듯 똑같다. 백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가격도 매우 비싸다. 고급 빌라의 경우 하룻밤에 백만원이 넘어서기도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화폐인 랜드(zar)를 사용해야 한다. 보츠와나와 탄자니아의 경우 외환은행에서도 환전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화폐는 가능하다. 게다가 직항 항공도 있다. 여튼 고급 빌라의 경우 많은 액티비티들이 포함되어 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다가 자쿠지가 있는 경우도 많다. 절반정도 하는 빌라도 있지만 이러한 사설 빌라는 어쨌건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이런 경우 공원에서 운영하는 휴식 캠프를 이용할 수도 있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정찰제), 그것마저 비쌀 경우에는 지정된 장소에서 텐트를 치고 잘 수도 있다.
아침부터 짚차를 타고 나가서 사파리를 할 수도 있다. 물론 가이드를 동행해야 한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스와힐리어를 쓰기도 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영어를 사용하므로 간단한 지식이 있다면 굳이 한국인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진 않는다. 빅 5라고 그들이 만든 말이 있는데 아프리카의 큰 동물 5가지이다. 사자, 표범, 코끼리, 버팔로, 코뿔소인데 크루거에서는 코끼리를 자주 볼 수 있고, 강에선 악어도 쉽게 볼 수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하마가 많다고 한다. 짚차는 렌트를 하는 것이고 스스로 운전하는 것이 아니면 또 돈이 들어간다. 걸어다니는 사파리도 할 수 있다. 역시 가이드가 필요하며, 가격은 싸지만 너무 힘들 것 같다. 낮에는 온도가 40도를 넘어선다니... 가이드도 필요없다 생각하면 차를 렌트하면 된다. 스스로 운전한다면 공원내 위반 속도를 주의해야 한다.
준비물은 무엇이 필요할까. 아파도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선블럭, 사파리의 로망, 동그란 황토색 모자, 그리고 쌍안경.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옷이다. 다큐를 보았던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대부분 밝은 황토색의 옷을 입는데 태양의 열을 그나마 잘 반사하고 동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색이라고 하니 꼭 준비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공원에서 꼭 지켜야 할 사항들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동물에게 절대 먹이를 주면 안된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마저 위험할 경우가 많다. 그 동물은 그야말로 야생동물이다. 동물이 가까이 있다면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위험하다. 호수나 강에 있다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손이나 다리를 물에 담그거나 하는 것도 위험하다. 크루거 공원내의 호수에는 악어가 많다.


make mosaic easily

you can choose the area of mosaic and the size of pixel.
language is japanese but dont have a fear of it, its too easy!
have fun!!

18 August, 2009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2 August, 2009

업, 플라스틱 시티

휴가기간 중 회사에 며칠 나오는 바람에, 혹은 그닥 볼 영화가 없기에 두편만 보았다. 업은 그냥 재미있었고, 플라스틱시티는 점점 이상해지는 영화였다. 처음에는 매우 놀랍다가 점점 이야기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아가는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많이 불편했다. 소무와 플랫폼의 감각보다는 유럽과 남미와 중국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조합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횟수가 줄어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집중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11 August, 2009

무더위

지난 일요일부터 폭염이다. 지난 일요일에 길었던 휴가가 끝났다. 에어컨이 없으면 나는 살기 어렵다. 어젠 회사 사무실 에어컨이 맛이 갔다.
정말 덥다.
더우니까 일하기가 싫고 짜증만 난다. 에효.

28 July, 2009

카페 느와르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

66회 베니스 영화제 진출!

<박쥐>,<마더>의 칸느 진출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

대한민국 영화의 대표논객, 영화평론의 살아있는 전설 정성일 감독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주연

신하균, 문정희, 정유미, 김혜나, 요조(신수진), 이성민 제작 영화사 북극성)이 오는 9 2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제 66회 베니스 영화제 진출을 공식 확정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박쥐>,<마더>의 칸 진출에 이어 이룬 한국영화의 또 하나의 쾌거이다.

신인감독의 대표등용문 비평가 주간 초청

영화를 본 프로그래머들, 만장일치로 초청 결정

베니스 영화제 측은 현지 시각으로 오늘 오전 11 30분에 <카페 느와르>의 공식 초청 소식을 전했으

, 영화를 본 프로그래머들의 만장일치로 이 영화의 초청을 확정했다고 해외 세일즈사인 엠라인디스트

리뷰션㈜에서 밝혔다. 베니스 영화제 출품작에 대한 공식발표는 원래 7월말에 있을 예정이나 <카페 느와르>에 대한 발표는 이례적으로 일찍 하였다. 이런 경우는 보통 영화제가 그 해 영화제에서 가장 주요한 영화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 의미여서 이번 발표는 의미는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카페 느와르>가 진출한 부문은 베니스 영화제의 비평가 주간 섹션으로, 비평가주간은 매 해 엄선된 7편의 신인감독 작품과 2편의 Special Events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한국영화로는

2004 61회 베니스 영화제에 김기덕 감독이 <빈 집>으로 FIPRESCI 상을 수상한 바 있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쓰리 몬스터>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천년학>등도 진출한 바 있다. 정성일 감독은 첫 데뷔작 베니스 영화제 진출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한국을 대표하는 평론가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가는 길목에 한 걸음 다가 설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대표 평론가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작으로 베니스 영화제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 정성일 감독의 행보에 주목하라!

<로드쇼> 의 편집장을 거쳐 한국 영화 평론의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했던 정성일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시네마디지털서울>의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문학적이고 탐미적인 평론으로 대한민국 영화 평론계를 좌지우지했던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들고 감독으로 나섰다. 평론가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점에서 정성일 감독은 한국의 프랑수아 트뤼포라 할 수 있다. 이제 평단이 아닌 감독으로 다시 대한민국 영화계를 호령할 그를 볼 날이 멀지 않았다.

사랑에 중독된 다섯 사람의 깊은 슬픔과 슬픔에 대한 한편의 시 <카페 느와르>

지독하게 슬픈 사랑에 중독된 영수(신하균)과 그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 미연(문정희), 그를 죽도록 사랑하는 또 다른 미연(김혜나) 그리고 영수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되는 선화(정유미)와 은하(요조), 다섯 사람의 깊은 슬픔과 사랑을 다룬 영화 <카페 느와르>. 베니스 영화제 진출을 확정짓고 하반기 개봉을 위해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목 : 카페 느와르

감독 : 정성일

출연 : 신하균, 문정희, 정유미, 김혜나, 요조(신수진), 이성민

제작 : 영화사 북극성

크랭크인 : 2008 12 7

크랭크업 : 2009 5 27

개봉 : 미정



* 베니스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소개

http://www.sicvenezia.it/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73&Itemid=64&lang=en


뚜둥. 드디어 정성일 씨 영화 완성. 겁나 어렵다는데. ㅋ

20 July, 2009

무한도전 음반 판매에 대한 생각

지난 주인가 무한도전은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라는 이름의 프로를 보여줬다. 당시에 만들었던 노래를 모아 앨범을 판매했는데 그 판매량이 3만장. 유명 가수도 판매량이 4~5만장이라고 하니 정말 많이 팔린 거다. 게다가 음원판매를 한 많은 음악사이트에서 대부분의 곡이 상위에 랭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상을 두고 기현상, 비정상이라고 하는 일이다.
그 신문의 요지는 가수들이 볼 때 참으로 허무하다는 입장이다. 몇년간 고생하여 만든 앨범이 얼마 팔리지 않는데 평균작곡시간 1시간 전곡을 합쳐야 열흘만에 만든 음악이 히트를 쳤다고 하며, 음악 흥행 여부가 홍보인 것이라 했다. 즉, 공들여 만든 음악보다는 무한도전이라는 유명 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를 한 노래가 히트를 한 것이라는 뜻이다.
어떠한 면에서 이건 사실이다. 뮤지션의 입장에서 허탈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첫째 어차피 음악 시장 자체가 과거에 비해 죽은 것은 사실이다. 백만이 넘는 판매량 이야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 주된 이유는 첫째 MP3보급으로 인한 CD 등 매체 구입의 불필요성. 게다가 당연히 음원의 불법 다운로드인 것이다. 그러니까 히트 앨범도 4~5만장 팔리는 것에 불과한 현실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둘째 무한도전의 앨범이 많이 팔린 것은 그 대중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기사에서도 한 작곡가는 인기아이콘에 맞는 가수를 영입하고 그 가수에 맞는 음악을 작곡했다고 한다. 즉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적절하게 취합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이런 작곡가에게 대충 작곡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허탈하다고 하는 가수, 음악가의 자세로 문제가 있다. 현재의 트렌드를 쫒아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능력부재이다. 무한도전의 러브콜을 못받아서 그렇다고? 아마도 무한도전은 스스로의 프로그램에 적합한 작곡가와 가수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무한도전도 살아남아야 할테니까.
마지막으로 이건 그저 일회성의, 프로젝트성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이다. 만약 어떻다고 하더라고 무한도전에게 러브콜을 받지 못한 것이 그저 인맥이 없다던가 운이 없다고 한다고 해도 좋다. 이 번일은 일회성 앨범이니까. 히트 앨범을 낸 많은 그룹과 가수들이 기사에서 말하는 그 유치하기 짝이없는 곡을 앨범으로 넣을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는 그렇지만, 나라면 쪽팔려서 그런 곡과 가사를 받는다면 집어치울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 상황이 1~2년간 고심끝에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라면 더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 노래는 역시 개그맨이 불러야 한다. 그 결과 3만장이 팔린 것이 배 아프고, 허탈하다면 방법은 분명하다.
음악성이고 머고 다 때려치고 자본을 모아라.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인기까지도.(반은 과장)

요즘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이 생겨 주말이면 가요 프로그램을 꼭 보는데 1시간동안 대략 10곡 정도의 노래가 나온다. 그 중에 내가 관심있게 보는 건 단 3곡 정도뿐이다. 왜일까? 내가 볼 때는 무한도전보다 못한 노래가 6~7곡이기 때문이다. 가수들과 프로듀서들은 적어도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는 무한도전의 노래가 더 좋았던 것이다. 적어도 내게 무한도전에서 나오는 홍보의 효과와 음악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홍보의 효과는 비슷하다.

ps. 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직접 구입한다. 최근에 구입한 앨범은 윈터플레이이며, 전곡을 구입한 MP3 음원은 브로콜리 너마저이고, black eyed peas의 imma be와 boom boom pow, Marilyn Manson의 Arma-Goddamn-Motherfuckin-Geddon, greenday의 know your enemy, linkin park의 new divide, 2ne1의 i dont care다.
ps2.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는 노래는 2ne1과 2pm, 소녀시대. 더이상은 보고 싶지조차 않다.
ps3. 솔직히 mp3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불법다운로드도 간혹 받는다. 회사를 다니는 30대의 입장에서 한두면 검색한 후 다운받을 곳이 없으면 구입한다. 시간도 없는데 검색하고 받을 여유도 없다. 지금도 노력은 하겠지만 더 노력을 해야할 터다.

09 July, 2009

복귀

이번 월요일부터 어제까지 사흘간 예비군 훈련이었다. 출퇴근하는 훈련이었는데 운이 좋은지 나쁜지 바쁜 와중에 사흘이나 쉬었다는 것이 괜찮았다. 게다가 회사에서 연락도 오지 않았다. 오늘 와보니 그닥 진행된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다시 바빠졌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예비군 훈련은 그야말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와의 싸움이다. 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는 고민스럽다. 그저 하염없이 앉아있는 때가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그런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쉬는 시간이라고 지정된 50분마다 10분씩 주어지는 시간에 가능하며, 교관이 없는 때에는 그저 놀고 있는 수업 시간에도 눈치보며 가능하다. 작년에는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책을 사놓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러 시지프의 신화를 가져갔으나 이내 끝나버리고 말았다. 둘째날부터 오락(고스톱)을 했는데 역시 게임은 시간을 짧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
지나고 나니 아까운 사흘이 흘렀다. 내년에도 훈련받을테니 더 좋은 시간떼우기 방안을 찾아야겠다.

03 July, 2009

brushings through Brushes



ipod touch의 brushes를 이용한 그림 두장 더, 근데 대략 실패.
나뭇잎을 그릴 때 그 부분만 확대해서 그린 터라 공대생들이 좋아하는 비율 문제가 발생. -_-
며칠 전 집에 있는 곰돌이를 보고 그리려다 보니 배경을 칠하지 않아 낭패.

30 June, 2009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
그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과거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다. 살아남은 자에게 과거의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것이 가족이라면 아마 이러할 것이다. 영화는 단 한번의 플래시백도 없이 그 커다란 이야기를 아주 작게 풀어낸다.
아마도 10년이 넘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 각자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이야기를 간직하고 그 이야기를 말하지 않으며 슬퍼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가끔 사소한 일들로 알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누구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료타의 아내는 끝까지 그 비밀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언젠가 어머니처럼 그 비밀을 말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의 그 이야기는,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툭 던지지만 그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준페이가 죽고 10년도 넘은 시간, 어쩌면 몇년도 더 살지 못할 그 즈음에 료타를 업고 갈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건 아마도 이전에도 료타가 명절에도 잘 오지 않으며, 오더라도 그렇게 자고 간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며, 같이 살고 싶어하지 않는 딸이 없고, 그래도 집은 료타에게 맡길 생각을 하는 그 저녁 식사이었기 때문아닐까.
2시간이나 되는 소소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상황을 설명하는 연출도 대단하거니와 그 2시간이 지겹지 않게 하는 어머니의 연기가 너무 탁월하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진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가감없이 표현하는 어머니의 연기로 인해 영화가 더욱 빛을 발한다.

26 June, 2009

Brushes - ipod touch application



아이팟 터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장점 중의 하나가 어플이다. 무료도 있고 돈을 내고 구입할 수도 있다. 그제 5달러나 주고 구입한 brushes라는 어플은 고스톱보다 비싸긴 하지만 훨씬 재미있다.
하루에 하나씩 벌써 2개나 그렸다.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서 배운 기술이란 것이 정물화에만 그쳐 그림이 다 저런 식이 될 것 같고 앞으로의 난관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자랑 삼아 포스팅함.

마이클 잭슨 사망

"I am absolutely devastated at this tragic and unexpected news," said Quincy Jones, a longtime friend of Jackson's and producer of his “Thriller” album. “For Michael to be taken away from us so suddenly at such a young age, I just don't have the words. ... I've lost my little brother today, and part of my soul has gone with him." from MSNBC.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결혼을 두번이나 해서 이혼했다는 둥,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아동학대 관련으로 잠수했다는 둥, 발코니에서 아이를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미국 방송사도 대단.

여튼 그의 음악을, 전부는 아니지만 좋아했던(앨범을 구입했었던) 사람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17 June, 2009

근황

몇명이 이곳에 와서 나의 글을 읽겠냐마는 왠지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남김.
1. 회사일이 갑자기 몰렸다. 인터넷 하기가 쉽지 않다. RSS로 쌓이는 포스트가 몇백개가 넘어가니 읽지 못한 채로 지워버리기 일쑤. 쥐새끼와 일당들이 요즘 특히나 지랄하는데 내코가 석자다.
2. 작년에 출판되었단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덕분에 평일에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2시간은 족히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책을 볼 때는 간혹 끊겨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읽을만큼만 읽어도 상관없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나의 20대가 너무나도 평범하게 지나온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대충 96년부터 05년까지. 대뇌에서 성기까지 라고 말한 김연수(혹은 황지우)씨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으니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더 생각해야 겠다. 책도 다시 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20대가 정리되면 아마도 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 책을 읽을 때 새로 구입한 앰프와 스피커를 사용하고자 음악을 틀어놓는데 책을 읽을 때 들어야만 하는 음악이라 선곡이 쉽지 않다. 집에 있는 씨디를 보니 들을만한 건 영화음악 뿐이다.(아무래도 책을 읽으려면 멜로디를 따라할 수 없는 음악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튼 어떤 음악이던지 스피커가 좋음을 느낀다.
4. 마지막. 와이프가 임신을 했다. 한 5주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회사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곧 아비규환이 된다고 한다. 몸이 힘들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냥 몸만 피곤해질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09 June, 2009

마더-두번째 관람

첫 씬. 김혜자가 걸어와서 그 희한한 얼굴 표정으로 춤을 출 때. 정확히 그것이 한 컷이었는지 거억은 나지 않는.
넓은 벌판의 김혜자는 마치 무엇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약간의 부감샷과 지미집을 이용한 듯한 자연스런 움직임은 어색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에서 같은 장소에 엄마가 도달했을 때는 그 컷이 없다. 그러니까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증인을 죽이고 난 후의 엄마는 그저 피가 묻은 손을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이병우가 연주한 같은 음악에 아마도 같은 춤을 추었을 장면은 너무도 불안하다. 차를 따라가며 핸드헬드로 찍었을 것이며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실루엣으로 촬영했다. 게다가 넓은 벌판과 비교하여 너무 좁은 버스안, 유리창 속에 갇힌 사람들. 넓은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은 너무 불안했다.
영화를 두번 째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영화가 주제로서는 모성이라는 데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글에 간단히 썼듯이 종팔이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엄마가 이 영화의 표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내내 잊어버리려는 사람과 잊지 않으려는 사람, 기억하려고 하나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준은 그저 정신지체이지만 모든 것을 잘 잊는다(잊는 것이 정신지체의 특징이 아니다). 엄마는 관자놀이를 지압하면 기억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도준은 계속 기억을 더듬지만 엉뚱한 기억만 해낼 뿐이다. 그는 쉽게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때는 놓쳐버리지만 결국 기억해낸다.
문아정은 기억을 하려고 한다. 핸드폰에 찍힌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문아정이 죽은 이후 문아정의 모든 씬이 플래시 백인 것은 관객에게 거꾸로 돌아가 다시 기억해내자는 감독의 표현이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엄마는 잊으려고 한다. 증인을 죽이고 진실을 감춘다. 그 이상한 춤을 추며 잊기를 원한다. 아마도 아버지였을 도준이 옆의 사진을 찢고, 도준이 박카스 농약을 기억했을 때는 "아니야. 아니야!"라며 영화상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어딘가에서 읽은 이 영화가 절망적이라는 이야기. 그 절망감은 기억하고자 했던 사람이 죽어버리고(아예 영화의 처음부터)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데서 나오는 것일테다.
친구가 마더를 보고 내게 보낸 짧은 문자는 노통이 생각난다는 것. 당시에는 음..그런가..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분명해졌다. 지금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너무도 슬픈 세상에, 지독히도 절망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진실을 잊으려고 하고, 진실을 덮으며, 다른 누구보다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 2009년 6월 현실과 끔찍하게도 똑같다.
그럼에도 봉준호는 진실은 언젠가 다시 생각나며 떠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마지막의 불안한 느낌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 술을 진탕마시고 변기를 잡고 토할 때 문득 떠오르는 5살 박이 도준이와 같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02 June, 2009

마더

올해 본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똥파리와 더불어 최고다. 박찬욱과 같이 미장센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더 큰 매력이다. 적어도 그만한 관심을 이야기에 쏟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혜자가 화장장에서 넘어지자 치매 할머니가 느닷없이 등장하여 막걸리 통을 휙. 던져버리는 그 씬(아마도 컷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은 거의 최고다.
또한 스릴러 영화를 보며 그깟 작은 영화적 도구에 이처럼 긴장한 것은 히치콕 영화 이래 몇번 느껴보지 못한 불안함이었다. 그래서인가 깐에서는 봉준호를 히치콕에 비유하기도 했단다.
"모정은 사랑의 최고 형태로 항상 절대화된다. 물론 모성은 숭고하다. 그러나 숭고에는 이면이 있다. 아름다운 바위도 뒤집어 들추면 시커멓고 축축한 흙에 처박힌 면이 드러나고 벌레들이 우글거릴 수 있는 것처럼 숭고를 살짝 뒤집으면 순식간에 어둠과 광기에 도달할 수도 있다."
영화의 주제는 이렇다. 어머니의 광기어린 사랑. 우리 도준이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런거야. 라고 했던 엄마가 진실을 알고선, 종철이라는 애가 도준이보다 더하다는 걸 알고선 엄마가 소리내에 크게 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때가 가장 슬프다.
"모자 관계는 가족 내에 형성되는 네벌의 관계- 모자, 부녀, 모녀, 부자- 중 특별하다. 네 관계 중 두 세트가 이성의 조합인데, 부녀 관계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정자로 매개되니까 어딘가 간접적인 반면에 엄마는 아들과 몸 안에서 본디 합쳐져 있었던, 신체적으로 독보적인 관계다. 섹스가 페니스가 자궁으로 들어오는 행위라면 모자 관계에서는 아들의 몸 전체가 엄마의 몸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놓지 못했던, 답답할 때 뻥뚫어준다는 그 엄청난 침술을 스스로에게 사용할 때, 바로 침을 맞는 곳이 치마를 걷어올린 허벅지 안쪽이라는 사실은 또하나의 단서이다.
첫장면의 미친 듯한 그 춤과 마지막 버스 안에서의 그 춤은 같지만 다르다.
솔직히 영화의 끝은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그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준이 쥐어준 그 침통을 받아든 엄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언젠가 스스로 진실을 기억해낼 테니까.

박찬욱과 비교하면서 봉준호의 영화적 장치가 박찬욱에 비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그렇지않다. 예를 들어 일본식 건물에서 한복을 팔고 뽕작과 바흐를 틀어놓고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하는 분위기 보다는 눈이 이쁜 얼굴 반쪽을 보여주다가 얻어터진 반쪽 얼굴을 보여주며 도준이라는 사람에게 있는 선과악을 표현하는 것이 더 내게는 맞는다는 것.

13년 개근

USA today 기사
가디언 기사
미국 인디애나 주 Terre Haute에 사는 한 여학생이 유치원을 포함하여 고등학교까지 1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출석했다며 여기저기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

모 블로거는 "그럼 나는?" 이라고 반문했는데. 예전같이 개근상이 대단한 일이었을 때는 많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학교보다 학원에 다니는 사람이 더 많고 무슨 현장 실습이니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학교 안나와도 되는 일이 많으니 그닥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직 개근상 받는 사람은 많겠지?
나도 13년 개근했는데...

27 May, 2009

쌍용자동차 파업과 관련하여.

요즘 시국이 워낙 어수선해서인지라 쌍용자동차의 파업에 대해선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회사가 망하는데 무슨 파업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 경영권 포기하고 먹튀한 것은 다들 잘 아는 사실.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을 인수한 것은 2005년이다. 당시 먹튀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그럼에도 상하이 자동차의 인수를 추진했던 것은 당시 정부였다.
그 때 1200억을 투자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올초 상하이자동차가 먹튀할 때까지의 4년간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에 투자한 돈은 단 한푼도 없다. 쌍용이 4년간 내놓은 신차가 없다는 사실도 대단하다. 먹튀. 디젤하이브리드 엔진 사업은 국책사업이라고 한다. 기술유출에 대한 끊임없는 주장에 3년 전 이와 관련하여 검찰 고발되었다. 검찰 수사는 끝이 났으나 결과는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비정규직300여명을 해고했다.
올해 또다시 2천여명을 정리해고 한다고 한다. 5천여명 중 2600여명을 해고하면 공장이 굴러가기도 어렵다.
노조는 신차 개발을 위한 자금 1000억 조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를 막기 위해 12억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사측은 이를 묵살했다. 대신에 전체 쌍용 노동자 5,000명 중 2,646명을 정리해고 하는 것이다.
왜일까. 정부는 지난달 10대 산업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첫순위의 자동차 산업 핵심 전략이 "현행 5개사를 3개로 줄인다"는 것이었다. 이미 쌍용자동차를 포기한 것이다. 사측은 모든 것을 노동자에게 덤탱이 씌우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그렇게 한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지경에서야 노동자가 그 결과를 모두 뒤집어 쓰고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것일까. 노조가 잘못되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결국 지금이 투쟁해야 할 때이며, 싸워서 얻어내야 할 시기이다. 그들의 파업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
작년 쌍용자동차 노조가 비정규직 300여명에 대한 해고를 합의하면서 싸우던 때에 비정규직의 편에 섰던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를 교체했다. 이유는 비정규직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왜냐고? 비정규직이 다 잘리고 나면 나중에 정규직을 자를 때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
그건 그들 뿐이 아니라 내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25 May, 2009

Awards of Cannes 2009

IN COMPETTION - FEATURE FILMS

Palme d'Or
DAS WEISSE BAND (The White Ribbon) directed by Michael HANEKE 
Grand Prix
UN PROPHÈTE (A Prophet) directed by Jacques AUDIARD 

 Lifetime achievement award for his work and his exceptional contribution to the history of cinema

Alain RESNAIS

Best Director 
Brillante MENDOZA for KINATAY 
Jury Prize

FISH TANK directed by Andrea ARNOLD

BAK-JWI (Thirst) directed by PARK Chan-Wook
Best Performance for an Actor
Christoph WALTZ in INGLOURIOUS BASTERDS directed by Quentin TARANTINO  
Best Performance by an Actress

Charlotte GAINSBOURG in ANTICHRIST directed by Lars von TRIER  
Best Screenplay
MEI Feng for CHUN FENG CHEN ZUI DE YE WAN (Spring Fever) directed by LOU Ye  
Prix Vulcain: Artist-Technician

Aitor BERENGUER, sound technician of the movie MAP OF THE SOUNDS OF TOKYO directed by Isabel COIXET.

IN COMPETITION - SHORT FILMS
Palme d'Or

ARENA directed by João SALAVIZA
Special 
Distinction

THE SIX DOLLAR FIFTY MAN directed by Mark ALBISTON, Louis SUTHERLAND
CAMERA D'OR 
SAMSON AND DELILAH directed by Warwick THORNTON (presented at Un Certain Regard)
Caméra d'Or – Special Distinction
AJAMI directed by Scandar COPTI, Yaron SHANI (presented at Quinzaine des Réalisateurs)

UN CERTAIN REGARD

Prix Un Certain Regard - Fondation Gan pour le Cinéma
KYNODONTAS (Dogtooth) by Yorgos LANTHIMOS
Jury Prize

POLITIST, ADJECTIV (Police, Adjective) by Corneliu PORUMBOIU. 
Special Prize Un Certain Regard 2009
KASI AZ GORBEHAYE IRANI KHABAR NADAREH (No One Knows About Persian Cats) by Bahman GHOBADI

LE PÈRE DE MES ENFANTS (Father of My Children) by Mia HANSEN-LØVE

CINEFONDATION
First Cinéfondation Prize
BÁBA by Zuzana Kirchnerová-Špidlová (FAMU, République Tchèque)
Second Cinéfondation Prize
GOODBYE by Song Fang (Beijing Film Academy, Chine)
Third Cinéfondation Prize (ex aequo)
DIPLOMA by Yaelle Kayam (The Sam Spiegel Film & TV School, Israël)
NAMMAE UI JIP (Don't Step out of the House) directed by Jo Sung-hee (Korean Academy of Film Arts, Corée du Sud)


from Festival de Cannes

20 May, 2009

DVD receiver 구입

결혼 전에 구입했던 필립스 거는 고장. 위에서 수직으로 디스크를 넣는 타입의 문제인지 좀 저렴한 것을 구입한 것이 문제였는지 이미 한번의 에이에스를 받았음에도 또 고장. 고장만 나면 다해인데 디스크까지 다 갉아먹어 큰 맘먹고 새것을 사기로 했다.
제품은 TEAC DR-H300, 스피커는 TEAC LS-H255.
야마하 것과 고민이 있었으나 10만원 저렴한 TEAC 걸로 결정
어제 받아보고 설치했는데 스피커 와이어가 없어서 급히 마트에서 구입.
어젯밤에 씨디 하나 틀어놓고 아침에는 씨디 바꿔서 에이징해놓고 나왔다.
음. 마음이 좋다.

지난 주말에 본 영화 세 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박쥐, 7급 공무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가장 잘 실현하는 감독이 홍상수 인 것 같다. 그러한 대구 속에 이야기를 잘 집어넣고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번 영화에도 찌질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데 마치 그런 인간이 당신 아니었냐라는 식인 거다. 홍상수나 박찬욱이나 그의 영화를 단 한 번 보고선 이야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머 그렇다.
글로만 보던 김연수씨가 나왔는데 어색한 연기가 웃겼다.
박쥐는 먼가 아쉽다. 나름 친절하게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미쟝센에서 나타나는 걸 이해하기는 어렵고 내용은 그럽게 파격적이지 않으며, 이야기가 때로는 지루해진다. 상영시간은 2시간이 넘지만 굳이 필요없는 컷들이 보이기도 한다. 신부가 굉장히 논리적으로 비춰지는데 그런 캐릭터가 현실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그다지 맘에 다가오지는 않는다. 거기에 약간의 유머까지 더해졌으니 이것이 진지해야 하는 건지 웃겨야 하는 건지 잘 모르는 상황이랄까.
7급 공무원은 짜임새있게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만서도 그닥 웃음거리를 찾기는 어렵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배우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난주말에는 빡세게 영화를 봤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똥파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또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08 May, 2009

Spring holidays in Cebu, 2009


in the beach of the resort
Originally uploaded by junsang, stanley, whatever.

its spring holidays from 30th April to 3rd May. I & my wife, Kate were in Cebu during that times. Nowadays because of the day-offs its busier than other days. But its okay. that trip was very good and pleased.

22 April, 2009

똥파리

배우가 감독을 하여 영화를 찍은 후 국제무대에서 수상한 이력도 재미있거니와 제목도 재미있어 조금 기대를 했었다. 영화는 여타의 데뷰작과는 달리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모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폭력의 유전, 가족의 해체라는 둥의 단편적인 이야기만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래서 배우 출신 감독의 이 신기한 데뷰작은 대단하다. 영화 속의 현실은 영화 속만의 현실이 아닌 그야말로 서울에서의 현실이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 또한 지금의 세상과 별반 다름 없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가족의 파괴와 한 남자의 아버지 극복의 모습은 짠한 감동을 준다.
정치적 혹은 관념적인 이유로 아버지와 사이가 그닥 좋지 않은 내게 '남자'에게 아버지에 대한 존재에 대한 물음과 그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나 모습은 영화에서 주된 관심사였다. 그것이 한국영화여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물론 100%는 아니고.)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나나 내 친구들이 느끼는 아버지란 존재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똥파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트라우마의 원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누나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5년을 복역하고 나온 아버지이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주는 것이라고는 욕설과 발길질 뿐이다. 상훈의 아버지 부수기는 그렇게 폭력적이다. 수금하러 간 어느 집에서 아내를 때리는 남자에게 너는 안맞을 것 같았지. 하지만 언젠가 맞는 날이 있다고 말하며 때리는 그 모습은 그저 폭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거기에는 상훈의 과거가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상훈이 어린 시절 그렇게도 싫었던 아버지에게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얻기 위해 아마도 상훈은 깡패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역 깡패로서의 삶이 상훈에게 돌려준 것은 그야말로 폭력 그 자체다. 좋은 아버지를 꿈꾸었지만 상훈은 그렇게 될 수 없다. 이복조카에게 아버지 행세를 하지만 조카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상훈은 조카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조카에게 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을 들키고서 미안하다고 하는 건 폭력을 이기기 위해 폭력을 일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상훈의 폭력 중 아버지에 대한 것과 다른이의 것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상훈은 그것을 동일시 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나 다른 사람이나 똑같이 생각한다.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알다시피 가족과 관련된 폭력의 장면은 다른 장면과 사뭇 다르다. 그것이 가족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언제나 달려가는 곳도 아버지다. 결국 아버지가 스스로 손목을 긋자 자신의 피를 뽑아가라고 소리를 치는 건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고, 어쨌든 더이상 남지 않은 가족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은 지금껏 자신 곁에 따라다니던 폭력이라는 것을 떼어놓는 일이다. 용역 업체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친구인 사장에게는 아마도 애인이라고 말할 연희를 소개시켜준다고 한다. 그러한 결심이 진부하기는 하지만 진심어린 것임은 분명하다.
마지막, 폭력 아래에서 자라나 폭력을 일삼고 다니며,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하던 그가 마음을 잡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할 때 어디서엔가 유전된 또다른 폭력 아래 비참한 결과가 드러날 때는 그저 슬플 뿐이다. 그런 어렵고도 따뜻한 결심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신인감독으로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놓고 다음 영화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타란티노가 황금종려상을 탔을 때 정성일씨가 한 말이 생각났다. 쥬세페 또르나또레 처럼 이제 타란티노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몇년 후 정성일 씨는 그때 그 말을 취소했다. 타란티노는 더 나아갔다고. 그래서 기대된다. 양익준. 다음 영화 또한 대단하길 바란다.

14 April, 2009

다큐프라임

평일에는 집에서 EBS를 주로 본다. 어제는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했다. 여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지라 근 한 시간동안을 보았는데 그들은 아프리카의 유목민이었다. 일년에 30~40회 가량 집을 옮겨다닌다. 그러니 집이 있을리 만무하다. 1~2주간 머물 곳에서는 나무로 움막을 만들어 산다. 아프리카의 고원지대, 초원이기 때문에 나무가 많지 않아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겨우 햇볕만 가리는 정도. 고원이라 밤에는 쌀쌀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촬영 중 한 임산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태어난지 일주일이 넘자 이제는 다행이라며 좋아한다. 신생아 사망율이 50%라니 그럴만하다. 산모는 산후조리를 해야 하지만 모포로 겨우 나무 위를 덮어 찬바람을 조금 더 막는 것이 전부이고, 남자들은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를 위해 사냥을 나선다. 식생을 좋아하여 기생충에 쉽게 노출되고, 물은 말라버린 강바닥을 파낸 후 고여든 흙탕물을 어떤 필터링도 하지 않고 그냥 마신다. 그 물로 갓 태어난 아이를 닦는 것도, 어른들이 입던 지저분한 옷으로 그 젖은 몸을 닦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한 이들은 그저 자연 그대로 살아간다. 그 모습이 어쩌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란 저들이 저렇게 살아가게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문명의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이다. 물론 그들이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잃지 않게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년에 알라스카의 어떤 할머니가 죽음으로 인해 하나의 언어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래서 어느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김연수씨의 블로그에 있는 어떤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글은 김연수씨가 중국 연길에서 살 당시 조선족 산악회 모임을 통해 산을 등반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는 산 정상에 올라 신입회원 환영회에서 회원들이 북한의 국가와 남한의 국가를 연달아 부르는 것을 보고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나도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놀라긴 했으리라. 그런데 김연수씨는 그 모습에서 민족을 떠올린 것이다. 소설가로서 쓰는 모든 소설은 분단 문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고, 통일된 미래의 우리나라 문학에 기대감을 본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난 '민족이란 그런 것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아프리카 오지의 유목민들을 보며 느낀 약간의 연민, 혹은 그들은 내버려둬야 하지 않나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저 그들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방송을 미국의 , 영국의, 프랑스의 흑인들이 보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그들은 내가 어렴풋이 느낀 민족의 감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혹은 교육적으로 한민족이라고 이야기해오고 있으니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어떤 느낌일런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불과 200년 전 티브이의 그 모습대로 살고 있다가 스페인의 벨기에의 네덜란드의 영국의 해군에 의해 붙잡혀 유럽으로 미국으로 간 흑인들이 바로 그들의 조상인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
그러다가 생각은 나로 돌아왔다. 저기 타슈켄트의 고려인이나 연길의 조선족을 티브이를 통해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일뿐 아닐까. 그들은 우즈베키스탄의, 중국의 국민일 뿐이고, 그 흑인들은 케냐의 국민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결과가 드러나는 일을 할 수 없을 뿐이다. 이렇게 티브이를 통해서 그들을, 그들의 생활과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그것이 지금은 단순한 지식일지언정 훗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 지식으로 인해 세상을 바뀔 수 있으니까.
앞으로 사라져버릴 에스키모 언어를 그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언어를 녹음한 어느 미국인도, EBS의 프로그램 기획자도, 오지를 탐험하여 세상에 보여주는 헤어조크도 스스로의 능력을 펼친 것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07 April, 2009

im not serious like that.


really depressed today.
i dont know why. maybe because i posted something before today.
saying or writing is difficult, sometimes as im saying i realize whats my thought at the same time. but you know. thats the life... untouchable inevitable thing.
alright.. memory has the limit and im gonna wake up weary tomorrow morning like always the same day.

욕심


'greedy' photo by Flidais/flickr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간 공부를 했지만 그 전공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다양한 공부를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젊어서 많이 편협했다. 이제와 세상돌아가는 꼴을 보니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
지금 이순간 너가 잘 아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대학원 전공, 요즘 회사일, 영화 정도..
요즘 관심많은 정치니 경제니 역사니 음악이니 하는 것들은 인터넷으로 지금껏 관심을 가져왔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간단히 이래저래라고 말을 할 수는 있을 지언정 왜, 왜, 왜, 이렇게 3번 물고 늘어지면 곧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하니 이제는 시간이 없다. 물론 나약한 합리화라고 말을 해도 어쩔수는 없지만 평일에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정신없이 보내고, 밤늦게 들어가 씻고 잠자기 바쁘며, 주말에는 청소에 세차에 이런 저런 일도 많고 종종 가족사에 참여하다보면 그렇게 한달 두달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말에 사놓은 책도 다 못읽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집들이에 갔다가 브로콜리너마저와 윈터플레이라는 국내밴드를 알게되었고, 어제 CD로 MP3로 구입을 했다. 퇴근 길에 메모리에 넣고 차에서 들었는데 2곡을 듣자 집앞에 도착했다. 음악도 앨범하나 집중해서 듣는 것이 힘든 나날이다. 하물며 영화와 책은 어떠하겠는가.
이런 것이 루틴이고 매너리즘 아닐까? 매일하는 영어공부도 이제는 대충 대충 스킵하기 일쑤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젊었을 때도 공부를 더 해야하고, 회사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과거지사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현재나 미래의 상황도 극복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내가 내 삶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31 March, 2009

약간의 수정

2007년 1월에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벌써 2년이 넘어버렸다. 2년 동안 같은 외관을 하고 있던 블로그였다. 나이가 들자 외관이라는 것이, 특히 블로그와 같은 것이라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은 회사에서 시간이 많았다. Rss feed도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니 이런 저런 서핑을 하다가 결국 블로그에 손을 대보았다.

제목이 있던 부분의 사진은 5~6년 전에 선유도에서 양평동 방향 쪽으로 저녁이 되기 전에 찍은 굴뚝 사진이었다. 이번에는 언젠가 까페에 꽂혀있던 장미꽃으로 바꿨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이어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있는 내가 찍은 사진 중 가로로 긴 사진이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설명을 써넣는 곳이 있는데 바꾸었다. 예전에는 그냥 영화(대부분 아시아영화), 여행, 내 삶에 대해 글을 쓴다고 했는데 Fucking mb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블로그 모양새가 좀 바뀌었다. 그래서 추가했다.

애드센스는 이미 예전에도 쓰고 있었다. 오늘 기록을 확인하니 Total Earnings $13.37 이라고 뜬다. 초기에 친구들이 광고 클릭을 많이 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고맙다. 2년 새 구글 코리아가 생기면서 애드센스가 바뀌었다. 개의치 않았는데 나도 한번 벌어볼까 생각으로 광고를 우측 메뉴 아래과 최신 글 바로 아래에 추가했다. 예전 애드센스는 내 블로그의 글을 분석해서 가장 비슷한 단어를 배열해주었는데 지금은 막무가내인 것 같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플리커 뱃지의 사진을 줄였다. mid-size로 했었는데 사진이 생각보다 커서 약간 민망한 느낌이랄까. 풍경이라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내얼굴 보는 건 작은 게 낫다.

바꾸고 나니 왠만한 것 괜찮은데 포스팅한 글의 줄간격이 가까워 글을 읽기 어려워보인다.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못찾겠네.

워낭소리

워낭소리가 관객 50만을 돌파했을 때 봤어야 했다. 100만이 넘어버리자 워낭소리에 대한 글이 인터넷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이신문을 들쳐봐도, 세상에 4대 일간지에서도 워낭소리에 대한 글이 있었다. 난 영화를 보기 위해 그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들리는 이야기는 '너무 슬프다', 혹은 '잘 만들었다', '재미있다' 등 칭찬 일색.
기대감에 부푼 나머지 보게 된 워낭소리는 무엇인가 이상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딸랑거리는 워낭의 소리. 그 소리가 내게는 너무나 거슬렸다. 심지어 그 소리가 동시 녹음의 소리가 아니라 후시라는 느낌이 들었고, 자세히 보자 그 소리는 역시 나중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넣은 소리였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소가 비춰지는 컷이 나오면 여지없이 들리는 그 소리는 거의 쇄뇌의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것이 마치 영화인가 다큐인가 하는 느낌 또한 계속되었다. 영화는 소가 죽은 다음 플래시백으로 과거 몇년전부터 다시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끝은 신기하게도 처음 시점이 아닌 소가 죽고 난 다음이다.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처음에 할아버지가 워낭을 들고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 회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그게 이상한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 구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옆에서 와이프는 울고 있는데 정신이 없다. 슬플만한 겨를이 없다. 후에 씨네21의 정한석과 허문영의 글을 보았다. 허문영은 지아장커의 24시티를 빌어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의 눈물 컷에 대해서는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거의 전적으로 허문영의 글에 동의한다. 글을 읽고 나니 마치 플래시백 이후는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헛생각도 든다.

허문영의 말을 빌어 나조차도 환청과 환상에 헤메게 하는 영화랄까..

원문보기

ps. 글을 쓰고나니 너무 인색한듯. 몇몇 컷은 정말 뛰어나다. 파아란 논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컷이랄까. 우리나라 시골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은 정말 이 영화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정말 "한국적"이라는데 왠지 모를 고마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25 March, 2009

도쿄소나타

절규를 본 것이 언젠가.. 아마도 2006년. 그러니까 깨나 시간이 흘렀다. 한사코 공포와 두려움의 주제를 풀어오던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를 보기 전 저 아름답기한 포스터 뒤에 어떤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알려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기요시 감독이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바뀐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나와 리플렛을 보며 역시 마케팅을 가족영화로 하고 있군. 이라고 생각할 때 무엇인가 다르긴 달랐던 것이다. 분명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진 않는 것 같다. 결국 권위의 상실이 가져오는 가족의 파괴, 그 과정.
평생직장과 같은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류헤이. 같은 신세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지만 그가 자살하자 있는 자존심은 다 포기하고 쇼핑몰 청소부로서 작업복을 입는다. 작업복을 입은 채 와이프를 만나자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 그에게 천만금의 돈이 생긴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집에 다시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와이프는 집에서 계속 외면당한다. 튀김을 해도 먹지 않고, 도너츠를 해도 먹지 않는다. 허공을 팔을 뻗어보지만 역시 허공뿐이다. 하루에 단 몇분도 볼수 있을까한 첫째 아들이 이혼을 하라고 말해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강도는 새로운 탈출의 계기다. 낯선 남자, 그것도 강도를 본의로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 일은 역시 꿈만 같은 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들이 미군에 입대하는 건 기요시 감독의 어쩌면 군대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듯. 그럼에도 엄마의 꿈에 죽음으로 등장하는 꿈속 장면은 역시 기요시만의 센스 같다는 생각.
문득 피아노가 치고 싶어져 급식비를 땡까고 피아노를 배우는 둘째 아들. 학교에서도 튀는 만큼 집에서도 튀려다가 아버지가 밀쳐 머리를 다치고선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던 녀석이 작업복을 입고 들어온 아버지에게는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니 그날 따뜻한 햇살의 아침은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삶이라지만 그래도 둘째 아들의 신동과 같은 피아노 실력에 류헤이 가족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피아노를 칠 때 모여드는 사람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뜻한 오후(아마도) 햇살까지.

처음으로 돌아가 첫 장면이 바람에 의해 날리는 종이와 책장들의 트래킹샷, 그리고 오즈야스지로의 시선과 유사한 정지화면을 뚫고 나타나는 엄마, 그리고 비바람이 들이치는 창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그 컷.
삶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비처럼 집안으로 들이닥쳤다가 문을 닫아 걸레로 깨끗이 치우기도 하지만, 가끔은 창문을 다시 열고 싶은 것이지.

약간은 변한 듯한 기요시의 영화가 다음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가 정말 궁금해진다.

ps. 야쿠쇼 코지의 등장으로 영화가 웃겼다. 하지만 그가 마치 귀신인양 사라졌을 때는 그 강도를 맡을 만한 사람이 야쿠쇼 코지라는 것을 알았다.

[펌] 연역법과 귀납법

중세가 끝나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되는데, 하나는 "경험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경험론 (empiricism)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합리론 (rationalism)이었습니다.

경험론의 시조는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려면 세상을 잘 관찰하고, 그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진리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관찰만 하는 사람을 개미 (모으기만 하니까), 관찰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을 거미 (자기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니까), 그리고 관찰을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을 꿀벌 (꽃에서 모은 단물로 꿀을 만드니까)에 비유했죠 . 그에 비해 프랑스의 철학자 르데 데카르트는 "진리의 확실한 기초"를 찾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기초 위에 논리적으로 건축한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가 찾아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는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습니다. 즉, 나는 영화 매트릭스 속의 인간처럼 환상의 세계를 참된 세계로 믿고 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을 하는 이상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이죠.

우리는 경헙론과 합리론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인의 중요한 특징은 no-nonsense, 즉 헛소리를 싫어하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상식에 잘 맞는 사고를 하기 위해선 현실을 벗어나면 안되고, 그러기 위해선 생각을 먼저 하고 관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먼저 하고 관찰의 결과에 근거해서 생각을 해야죠. 그에 비해 프랑스인은 현실에 얽매이기 보다 이상에 맞는 세계를 건설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표현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는데,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영국은 지금까지도 귀족제도가 남았는데, 프랑스는 빠른 시일 내에 신분의 차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험론은 귀납법 (inductive method)에 의존을 합니다. 귀납법은 관찰에서 시작해 결론을 나중에 내리는 방법입니다. 그에 비해 합리론은 연역법 (deductive method)에 의존하죠. 연역법은 확실한 명제에서 시작해, 논리적으로 파생해 나가는 방법이죠. 귀납법의 문제는 관찰만 하다간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진정 관찰에 의존해서 결론을 내리려면 세상의 모든 케이스를 다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하기 마련이죠. 따라서 몇 가지 샘플만 놓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관찰에 의한 결론"이 아니라, "관찰자가 임의로 선정한 샘플에 의한 결론"이기에 경험론에 충실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역법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맞는 말 같아도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면 공산주의가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곧 무너지고 공산주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는 너무도 논리적인 말이라 현실은 당연히 논리를 따라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금, 마르크스의 논리적인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경험론과 합리론, 귀납법과 연역법의 대결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기에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에서는 합리론과 연역법이 훨씬 강세로 보입니다. 귀납법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현실은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합리론자들은 미래에 대해 대단히 자신있게 예측을 합니다. 몇년 전에 골드만 삭스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BRICs로 묶어서 "이 네 나라가 몇십년 안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리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죠. 골드만 삭스가 점쟁이도 아니면서 이 나라들의 미래를 예측한 근거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합리주의자들은 논리를 근거로 하면 자잘한 현실의 변화를 뛰어 넘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최근 화제를 모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철저하게 경험론의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블랙 스완은 경험론자였던 데이비드 흄이 들었던 예인데, "눈에 보이는 백조가 모두 흰 색이라고 해도, 세상에 검은 백조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이 말은, 관찰만 해서는 일반론을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미래가 이럴 것이다"는 식의 절대적 예측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실제로 유럽인들이 호주를 발견한 후,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끄는 원인은 최근 예상 밖의 경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많이 나왔지만, 작년 9월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이러한 예측이 하나 같이 어긋났고, 이처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끈 것이지요.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예상을 하다가는 꼭 크게 틀리기 마련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요즘이야 말로 "경제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 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꼭 논리적인 근거를 덧붙이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그래,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예측이니 분명히 맞겠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현실이 논리적인 예측에 맞게 움직이리라는 것은 합리론의 망상입니다. 언제보다 합리론의 권위가 떨어진 지금, 합리론에 근거해서 예측을 너무 믿으면 안되겠죠.

지금 상황은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가장 잘 맞춘 외국의 저자들도, 경제 위기와 함께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은 하나같이 틀렸습니다. "미국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달러화는 반대로 초강세를 보일 것이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맞을 수 없었던 것이죠. 앞으로도 경제에 대한 예측은 많이 나오겠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린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말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cimio님의 글

18 March, 2009

그랜토리노

지난 주말에 그랜토리노를 보았다. 체인즐링을 본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랜토리노라는 영화일 때는 더욱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체인즐링보다 나는 그랜토리노가 좋다. 잘 모르는 과거의 미국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체인즐링에서는 차가움과 냉정함의 기운을 느꼈다면 그랜토리노에서는 따뜻함과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랜토리노는 월터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72년산 포드의 자동차 이름이다. 한국전에 참가하고 포드를 다녔던 사람, 집에는 그랜토리노가 있지만 그것을 타지는 않는 폴란드 이민자 월터. 그야말로 늙은이 구닥다리 보수주의자다. 백인들은 다 떠나는 마을에 계속 남고, 이웃들은 동양인이거나 멕시코 사람들. 가족들은 한낱 사소한 이익만들 바란다. 그런 이 세상에 월터가 생각하는 건 그저 스스로 지켜왔던 그 어떤 가치를 지키며 스스로 살아가는 것. 거기에 가족조차 들어갈 자리란 없다.
그런 그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는 동네 불량배에게 당하는 옆집 동양 아이(수와 타오 모두!)를 구해준다. 이것을 인연으로 월터는 옆집 사람들에 대해, 혹은 이웃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월터는 자식보다 이웃의 동양인들이 자신을 더 이해한다고 진실을 말하게되고, 결국 갱들과의 승부다.
잠깐 언급했지만 고지식한 미국인이 동양인을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변하는 계기는 당연히 두 동양아이를 구해준 것이지만 이른 바 말하는 선행과는 다르다.
자신의 마을에 흑인이 설쳐대는 꼴을 보지 못하는 더티해리의 마음이고, 동양인들이 자신의 땅에 들어와 싸우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것들은 다르다고 언제나 느끼는 사람이다. 이탈리언 바버, 혹은 아이리쉬 건축업자는 모두 친구. 하지만 동양인과 흑인에는 마음을 열지 못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그랜토리노를 타오에게 주는 건 결국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웃에 살던 그 사람들 모두 미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토요타가 판치는 세상에 그랜토리노와 같은 사람이 내민 손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바로 이스트우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지막 타오가 그랜토리노를 타고가는 장면은 어색하다. 옛 영화에서만 보이던 옛 스타일의 미국 차와, 동양아이의 조화. 그 조화가 지금은 어색하지만 앞으로는 나아질거라 이스트우드는 믿는다. 그래서 마지막 컷에서 나는 그랜토리노가 지나간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ps. 이스트우드 할배가 늙었다고 그 포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손가락 총으로 사람들을 겨눌 때의 그 모습은 너무 멋지다. 멋지다 못해 환장할 정도.

05 March, 2009

Sun rise


Sun rising
Originally uploaded by junsang, stanley, whatever.

지난 주말 동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들어 처음 쉬는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3월 1일 첫해를 추암에서 맞이했다.
그저 떠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고, 나름 즐거웠지만 피곤했다. 게다가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

27 February, 2009

핑계

요즘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정신이 없어서 글을 쓴다는 건 더 생각하기 어려운 실정.
나름 시간 쪼개서 진득허니 앉아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업무와 이 나라 꼴이 개판이라 시작조차 하기도 힘든 게 또한 사실.
온나라 사람을 다 감옥에 쳐놓고서야 나라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또라이들이 판치는 세상.
권력과 돈앞에 개가 수없이 많아지고 있다. 짖으라면 짖고, 무서운 척하면 깨갱하는.
아..
정신이 혼미해진다.

16 February, 2009

Image Mosaic Generator (v3.0) & obamiconme




Image Mosaic Generator (v3.0) -Its free. And Obamicone image.
that's my example and following image is the original one.

10 February, 2009

취향 분석

ID Solution이라는 사이트에서 취향분석 사이트 개설 중.
정해진 답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들이 자신들의 결과를 판단하여 계속 수정되는 형식.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대중지성. 머 그런 거.
심심할 때 해볼만 함.
주의할 점. 두 가지 선택 중 정말 선택하기 힘든 건 "모르겠다. 통과"를 클릭.

http://idsolution.co.kr/test

나의 결과 : 논리적이고도 예술적인 다양성의 영역

“모든 진보는 인기 없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지능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논리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까다로우면서도 너그러운, 엄격하면서도 다양한, 질서정연 하면서도 자유로운 이중적 완벽주의, 문화적 진보 성향을 위한 공간입니다.
“사랑해요” 남발하는 기업 광고, “가족 여러분” 남발하는 라디오 DJ, 연예인 개인사로 먹고 사는 케이블TV, 스포츠 신문, 삼각관계 드라마, 조폭 코미디 영화, 기독교 전도사, 이슬람 근본주의자, YMCA 청소년 선도위원회, 인종차별주의자, 극렬 페미니스트, 남성우월주의자들은 이곳에서 거부될 것입니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좀 까다로운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도 많은 편.
간결(simplicity)과 명확(lucidity)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편. 인과관계가 철저히 맞아 떨어져야 하는 완벽주의적 취향도 있음.
작위적인 것에 불편해 함. 가격, 인기, 외모 같은 외적 요인엔 관심이 없음. 대상이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한지, 얼마나 깊이 있고 내실 있는지에 중점을 두는 편.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도와 지식 수준이 높은 편, 거품, 포장, 속임수에 잘 속지 않음. 어렵고 고급스러운 콘텐트에 관심이 있으며, 통속/세속적인 콘텐트를 경멸하는 경우가 많음.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 일단은 거부감. 극단적이고 새로운 콘텐트에 대해 너그러운 편. 그러나 자신의 취향과 다른 콘텐트에, 식상하고 뻔한 콘텐트에 적대감을 갖는 경우도 많음.

09 February, 2009

24시티

24시티를 보았다. 돌아보니 꾸준히 지아장커의 영화를 봤다. 개봉하자마자 봐야만 했던 감독의 영화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24시티가 개봉하는 조차 몰랐고, 이미 알았을 때는 24시티가 막을 내린 다음이었다. 다행이도 시네큐브에서 지아장커 감독전을 개최했다. 소무도 보고 싶었으나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지아장커는 역시나 이번에도 조금 더 나아간 듯 하다. 초기 극영화는 6세대적인 영화적 미학을 새로이 만들었던 것 같다. 이번 영화가 '세계'를 거쳐 '무용' 후에 나왔다는 것은 어찌보면 납득할 만한 일.
24시티를 본 후 궁금한 것은 사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해결된다.
그가 다큐의 형식을 선택한 이유, 디지털을 고집하는 이유, 4명의 배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
솔직히 이것이 내가 궁금한 모든 것 아닐까. 게다가 이 인터뷰에는 어떤 훌륭한 관객에 의해 공간에 대한 지아장커의 생각도 확인할 수 있다.
24시티를 보면서 느낀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처음에 마치 초상이나 영정을 찍는 것 같이 등장했던 어떤 아저씨. 다 늙은 할아버지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던 아저씨가 다 비어있는 공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아저씨는 역시나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공장에 들어와서 칼 같이 생긴 도구를 만들어 쓰다가 쉽게 버렸는데 어떤 고참이 재료를, 도구를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면서 자신이 버린 것을 가져다가 썼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찾아가 흘리는 눈물은 무엇일까. 옛날의 일이 떠올라서. 그렇게 대단했던 고참이 이제 귀도 안들리고 말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인가.
전쟁이 한창일 때는 잘 나갔지만 결국 군수산업이 하향세에 접어들고 더이상 가치가 없어지자 공장을 허물고 24시티를 올리는 것에서 더이상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그 자신과 오버랩된 것은 아닐까.
마지막 씬에서 자오타오가 어느 빌딩 옥상(아마도 옛 학교에서 바라본 자신이 곧 매니저를 할지 모르는 그 타워의 꼭대기)에서 청도를 바라보는 모습이 뭉클한 것은 단순히 420 공장이 없어지고 24시티가 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아닐 것이다.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딸일 뿐이라고 말하는 자오타오가 어느 날 420 공장에서 남자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뛰쳐나와 부모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결국에는 24시티에 모실거라며 울먹이는 이야기는 식상할지 모르지만 급변하는 중국 속을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이 아닐까.

씨바 짜증 조낸 남.

요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일이 폭주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나도 에반겔리온 마냥 폭주할 것 같기도 하다. 회사에 와서 책상을 보고 오늘 일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눈쌀이 찌푸려져서 오후가 넘어가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머하나 제대로 넘어가는 일은 없고 계속해서 일이 생겨버린다. 윗사람이 시키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 회사가 이따위로 돌아가는 일이 대충은 이해가 되고, 아랫 사람들이 몸사리며 어떻게하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걸 보니(짠밥을 먹으니 그게 다 보이는 게 신기하다) 짜증이 이만치 올라온다.
식사시간에 자리에 와서 인터넷을 하고 있으면 더 짜증이 난다. 이 놈의 회사보다 더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 이나라의 정부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싶으면서도 아예 대놓고 mb 똥꼬 핥아주는 꼬락서니는 현실이 영화같은 초현실적인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요즘 같아서는 매일매일 회사친구들과 술이나 퍼먹으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쌍욕을 해대거나 술먹다가 수구 꼴통 또라이 새끼들과 패싸움이나 붙어서 실컷 싸우거나 집에 들어갈 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한달간 골아 떨어져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몸무게가 느는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면 수영을 가려고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려고 하는 내모습을 잠시 뒤에서 바라보니 너무나도 바보같은 것이다. 그것마저도 나에게 스트레스가 아닌가.
언젠가 어머니가 신문 기사를 보시고 내게 담배를 끊으면 평균 8년을 더 살수 있다고 말하기에 나도 신문 기사를 다 읽고 스트레스 받으면 수명이 30년 짧아지니 나는 담배피고 22년을 더 길게 살겠다고 말한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렇게라면 38년 수명이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내게 가장 익숙한(어색하지 않은) 것, 몸이 힘들지 않은 것.
결국 여행을 또 가거나 영화를 하루종일 보는 정도. 그나마 이것도 내맘대로는 안된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낫겠다.

04 February, 2009

미얀마에서 온 편지


IMG_9829
Originally uploaded by junsang, stanley, whatever.

제목을 쓰고 나니까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났다.
여튼 어제 집으로 편지가 왔다. 물론 나에게 온 것은 아니고 와이프에게.
나는 국내 정당에, 와이프는 미얀마의 누군가에게 기부를 한다.
world vision이라는 곳을 통해서인데 기부를 받는 그 누군가가 편지를 썼다.
난 연필로 열심히 한면을 꽉 채운 편지를 오랜만에 받아들었다. 그 글은 알아볼 수 없는 글이었다. 그래서 뒷장에는 단체의 누군가가 해석을 해 영어로 된 편지도 있었다. 와이프가 기부를 하는 사람은 편지를 쓴 사람의 어머니였다. 대나무로 지은 단칸방의 집에서 일곱 식구가 생활하고 있단다.
와이프가 한달에 얼마의 돈을 기부하는지 그만한 돈이 그들에게 얼만큼의 혜택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기부를 통해 이러한 편지나 내 손에 들려졌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와이프는 아이를 위해 편지를 쓸 것이라고 했다.

예전 학교다닐때 봉사활동을 다녔던 기억이 났다. 처음 갔던 날의 초조함과 흥분 등 사소한 감정들이 다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갔던 날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며 다녀왔던 것이 아니라 간다간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난 후 무엇 때문에 갔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정말 그들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나를 위해서였을까.


ps. 편지의 마지막에는 좋은 아이가 될 것이며, 커서는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
미얀마. 군부에 의해 버마라는 이름이 미얀마로 바뀌었다. 아웅산 수지는 10년이 넘도록 가택에 연금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군부는 그야말로 독재정권이다. 그런 세상에 어린 아이에게 비치는 군인의 모습은 돈과 권력일테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한 입장은 아니지만 이 아이가 군부를 엎을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03 February, 2009

간단한 영화소식

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는데 제목은 공기인형(空気人形). 주연에는 배두나가 열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음. "하나" 이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못봤네.

둘.
2월 5일부터 일주일간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지아장커 감독전이 개최된다. 24시티가 개봉하였음에도 보지 못했던 내게 절호의 찬스.

29 January, 2009

체인질링

설연휴 첫날 아침 혼자 부시시 일어나 소복히 쌓인 눈길을 달려 극장으로 갔다. 간만에 4천원에 영화를 봤는데 체인질링 이었다. 이스트우드 할아배의 최신 영화가 나온 뒤에 보는 약간은 늦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해야만 했었는가 하는 나름의 의심과 할아배의 성품은 역시나 곧고나 하는 마음을 보았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언짢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머랄까 정치적인 부분. 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 또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솔직히 체인질링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를 다시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서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 면모가 이스트우드 할배를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와중에 진보의 면모를 선보이는 것을 누구도 알고 있지 않은가. 밀리언달러 베이비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행하는 코치 혹은 유사 아버지의 행동은 옳고 그르다의 문제는 분명 아니며 꽤 진보적인 모습인 것이다.
체인질링에서도 부담스러운 씬이 있었는데 연쇄살인마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 굳이 들어가야 했겠는가를 곱씹어봤을 때 죽기 싫어 발버둥치는 모습이 그 씬의 목적일 수도, 혹은 클로즈업한 콜린스 어머니의 "죽어도 싸다"는 눈빛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씬은 이율배반적이다. 아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도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 씬이 영화속 인물들에게 있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래서 영화의 처음이 true story라고 당당히 밝히지는 않았을까.(이스트우드 빠돌이 분위기.ㅋ)

스토리라인만 들었을 때는 이 영화를 굉장히 극적으로, 또는 굉장히 엽기적으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하며, 신파적인 분위기가 되어도 무방할 때조차도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저 20년대 싱글맘이 아들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만을 따라간다. 아무말 없이 눈물만을 흘리기도 하며, 당당히 서명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도 한다. 과연 이스트우드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 감독의 첫 여자 이야기. 그란토리노를 빨리 보고 싶다.

여튼 이 영화가 2009년 1월 한국에서 개봉을 하여 나를 포함한 이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느꼈을 것. 바로 1920~30년대의 미국과 2009년의 한국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지금의 한국이 70년 전의 미국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70년전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었고, 여성차별이 존재했으며,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였다. 물론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지는 것이다.

08 January, 2009

Flickr 사진

작년 10월부터 플리커에 사진 올리는 방법을 flickr uploader를 사용했더니 설정이 다른 사람들은 볼수 없게 되어 있었다.
-_-;
나야 맨날 로그인을 하니 모든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미처 알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동안 올린,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사진은 부산에 갔었던 사진, 도쿄에 갔었던 사진, 그리고 얼마전 타이베이에 갔던 사진들로 약 150여장이 될 듯하다.

실수였지만 여튼 복구해놓았으니 구경 한번 오시길.

토정비결로 본 2009년 나의 총운

인유구연 우래조력이라,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우연히 다가와 돕는도다. 용이 천문을 열으니 구름이 걷히고 비가 내리는 운이로다. 금년에는 남쪽과 북쪽에 길한 운세가 들었고 귀인이 나타나 도울 것이며 바라던 뜻을 이룰 수 있겠다. 그러나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은 운세이니 운인들 이 조화를 어찌 막으리. 명산에 가서 액을 막고자 기도하라. 금년의 신수는 뒤로 갈수록 길하므로 움직이면 꾀하는 만큼 구할 것이고 귀인이 나타나는 수가 들었으므로 이는 마치 구름 같이 많은 수의 벗이 나를 돕는 운세. 사람들에게 평소에 베푼 은덕이 비로소 공이 되어 나에게로 오니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다. 재물은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해이니 분수껏 도리를 지키며 구할 때 비로소 내 곳간에 쌓이는 괘. 아울러 년초에 정성을 신에게 드리면 더욱 길하리라.

1월의 운세
운수가 대길하니 백 가지의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이 달에는 더욱이 귀인이 나타나는 달이므로 가만히 있어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겠고 헛된 일 중에서도 나에게는 내실을 기하는 실상을 얻게 되는 좋은 괘로다.

2월의 운세
분수를 지키고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서 도리에 맞게 생활하면 반드시 그 중에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남쪽으로 가면 길하니 그곳에서 사업을 벌이면 성공하게 되리라. 그러나 부부의 사이가 좋지 못한 달이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3월의 운세
하늘에서 기름진 이슬을 내리니 땅에서는 단 샘이 나오도다. 오곡이 풍성한 가운데 의식은 넉넉하리라. 이 달에는 귀인이 항상 나를 도우므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경영하는 일도 순조롭게 풀려 갈 것이다.

4월의 운세
옛것을 지키고 안정하면 그 가운데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말을 믿고 전업을 한다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도리어 해가 있으니 허황한 욕심을 버리고 처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라.

5월의 운세
운수가 형통하므로 가정에는 길함이 들어 평화로운 운수. 영신이 나를 도우니 도처에 재물이 있고 바라던 일을 이룰 수 있다. 만일 혼인하지 않으면 횡재하여 재록을 쌓을 수이니 풍요로움이 떠나지 않는다. 봄바람에 방초가 나부낀다.

6월의 운세
재록이 일어나는 달. 이곳 저곳에서 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애써서 구하지 않아 도 자신을 만족한 자리에 앉게 된다. 풀이 푸른 강가에서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운세이니 얼마나 평화롭고 한가한 일인가. 늘 화기로운 기운이 머무도다.

7월의 운세
이름을 사방에 떨치게 될 운이 왔으므로 관록이 몸에 따르고 많은 사람이 나를 추앙하며 따른다. 재물을 많이 모으게 되고 부유함 속에서 권력을 쥐게 되니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럽지가 않은 괘로다.

8월의 운세
허욕을 탐하지 말라. 길했던 운세도 도리어 재앙으로 바뀔까 봐 두렵도다. 액을 막기 위해서는 명산에 들어가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하겠다. 이 달은 위험이 도사리는 달이므로 특히 매사를 침착히 행하라.

9월의 운세
훈훈한 봄바람이 한창이니 도처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고 염원하던 일을 이루어 희색이 만면하리라. 만일 재물을 얻지 못하면 자손에게 경사가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된 좋은 달이다. 뜻밖에도 크게 재물을 모아 가산을 늘리리라.

10월의 운세
설사 먼저는 잃는다 하여도 노여워 말라. 머지 않아 도리어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운세. 귀인이 나타나는 달이므로 반드시 성공한다. 성심껏 노력하면 일년 신수 중 가장 크게 성공할 달임을 각별히 명심. 심는 대로 거두는 법!

11월의 운세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촛불을 얻게 되는 좋은 운. 재운이 들었으므로 항상 일이 형통하겠고 반드시 큰 재물을 얻게 되니 이는 하늘에서 내려 주는 복락인지라 어느 누구도 당할 자가 없도다.

12월의 운세
분수 밖의 것을 탐하지 말라. 도리어 불리! 이 달에는 목성을 조심해야 하겠다. 이를 어기고 함께 동사하면 손재수가 따르므로 내 것을 잃은 뒤 후회하는 일이 생기리라. 분수를 지키고 겸손히 행동하면 그 가운데 복락이 깃들이리라.

나참. 이렇게 좋으면 더 부담되는데.

출처 : 역술닷컴(무료 토정비결)

05 January, 2009

"국제주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 읽는 사이트 중의 하나는 www.wsws.org 입니다. 트로츠키주의 사이트인데, 시야가 넓고 자본주의 세계의 주요 경향들을 잘 짚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트로츠키주의"라 하면 "다함께"와 같은 조직들이 맨 먼저 떠오르지만, 제가 말한 그 사이트에 의하면 "다함께"의 모태인 영국의 사회주의노동당은 단지 "기회주의적인 개량주의자"들이랍니다. 그러니까 본인들의 주장으로는 그것보다 더 왼쪽이라는 이야기지요. 뭐,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혁명"을 실천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은 사회주의노동당이나 그 www.wsws.org나 마찬가지지만, 사회주의노동당 같으면 매우 폭넓은 "통일전선" 전략을 추구하여 그 주의를 꼭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사안별로 연대하지만, www.wsws.org 는 "독야청청", 양보없는 "트로츠키주의 사상적 순수혈통"을 자랑합니다. 그거야 저로서 일종의 "좌파적 위정척사"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정체, 사회의 이면들을 잘 폭로해주는 기술을 www.wsws.org으로부터 충분히 배울 만합니다. 그래도 썩어빠진 이 세게에서 그러한 독자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부터 고마운 일이죠.

www.wsws.org가 이번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도살 작전을 어떻게 보는가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입니다. 이 분들이 똑똑하게도 "양비론"으로 빠지지 않고 하마스 아닌 도살자 이스라엘에만 이 사태에 대한 주된 책임을 추궁하는 동시에 "아랍 대중들과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연대된 사회주의적 투쟁, 그리고 중동의 사회주의적 혁명과 중동에서의 사회주의적인 연방 건설"을 주문했습니다 (http://www.wsws.org/articles/2008/dec2008/pers-d30.shtml). 그걸 읽으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질 뻔하네요. 지금 아랍인 학살을 이미 지상에서도 시작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세요, 지금 저지르는 악행을 회개하세요, 그리고 사회주의로 개종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손을 잡고 착한 사회주의적 투쟁에 나가세요"를 말하는 격인데, 이건 말하자면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강도에게 "일제중생들이 실유불성인지라 참회하여 이런 악업을 저지르지 마오, 도반이 되자"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어찌 보면 참 선한 일이 아닐 수야 없지요. 이상적으로야 강도가 칼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강도에게 설법하는 것은 좋은 일일 테고, 아랍인과 유태인들이 계급형제가 되는 것은 중동 문제의 가장 근원적 해결임에도 틀림없지요. 이상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도적을 만난 영재스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여러분들께서 설법을 듣고 참회하여 칼을 던진 도적을 많이 보셨어요? 이스라엘군인들이 www.wsws.org를 열독한 뒤에 자동총을 던져 계급투사로 업종변환할 가능성은, 러시아 스킨헤드들을 모스크바에서 만난 부랴트 자치공화국 학생이 그들에게 부처님과 악업, 선업, 윤회를 이야기를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도를 벗어나게끔 할 가능성만큼이나 미미합니다. 뭐, 도력이 높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도력이 높은 사람들을 여러 분들이 많이 보셨나요?

피해자가 가해자를 설득하여 회개케 하고, 나아가서 "공동체"를 이루는 길... 참 이상적인 해결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쎄, 저만해도 예컨대 서울의 뒷골목에서 어떤 젊은이가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아!"라고 하면 아마도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생계 때문에 이러는 것이죠? 그렇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우리가 같이 나누고 앞으로 서로 도와주면서 삽시다. 어려운 입장이라곤 알겠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면 당신도 크게 나아질 일 없고, 그 다른 사람도 어렵게 되니 우리는 그렇지 말고 윈윈 전략으로 합시다". 일단 시도는 당연히 해볼 것입니다. 뭐, 싸우거나 돈을 그냥 내놓는 것보다 아무래도 나은 전략일 것 같아서요. 그러나 만약 이 젊은이가 저를 잘 때려 노크다운시킨 뒤에 제 지갑을 그냥 가져가버리면 反폭력주의자인 저라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요? 역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차악"인 국가폭력에 그저 호소할 셈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 폭력에 어쩔 수 없이 호소하게 될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요? 많이 내려잡아도 약 90% 이상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호소할 수 있는 "세계 경찰"이란 없기에 (세계 깡패인 미국에 호소해봐야 득이 없는 건 세상이 다 아니까요) 그들 자신들이 "경찰"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상론은 어떻든간에 현실론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무도극악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은 전체 아랍인 민중들의 연대와 무자비한 무장 투쟁일 것입니다. 그게 개개인의 도덕 차원에서 보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지금 거기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가 않아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지금 국제계급연대주의는 무효다, 폭력적인 민족 투쟁 밖에 대안이 안보인다" 이런 말을 쓰고 나니 이를 고치고 싶은 욕망이 절로 생깁니다. 미미하더라도 이스라엘인들의 - 계급적이든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 개과천선의 가능성을 정말로 찾고 싶은 심정이죠. 그런데 예컨대 역사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1941-45년간의 소독 전쟁을 보시면 독일군이 우세했던 1943년초까지는 독일군인들이 탈영하여 소련측에 넘어가 반파쇼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들이 아주 드물었지만 (예컨대 카렐리아 전선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http://uni-persona.srcc.msu.su/site/authors/djakonov/II.4.htm ).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대첩 이후에 파쇼들의 패색이 짙어지자 특히 옛날 공산당이나 사민당 당원들이 탈영을 해서 반파쇼 전선에 합류하는 일은 훨씬 흔해졌어요. 소련 군인들이 그들에게 "그러면 어떤 경위를 통해 원래 공산주의자 내지 사민주의자인 당신이 파쇼군인이 됐는가?"를 물었을 때에 "1934년, 히틀러가 이기고 공산당/사민당이 패배자임이 드러나자 일단 당원증을 없애고 당원이었음을 숨기면서 살았다"는 답은 보편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파시즘이 승자가 아닌 패자임이 또 분명해지기에 오랫동안 잊어온 사회주의자로서의 양심이 다시 살아난 셈이었습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 칸트가 뭐라 하든간에 - 절대적인 차원은 절대 아닙니다. "양심"과 현실, 즉 현실 속에서의 생존을 추구하는 본원적인 물적 욕망들은 아주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극소수와, 양심만으로 자기 생존을 포기할 만큼 의인 기질이 높은 극소수는 그 숫자는 아마도 비슷할 것이고, 나머지들의 양심 발로의 가능성은 "상황에 따라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인들이 잊어온 양심을 되찾자면, 대체로 그 군대는 일단 한 번쯤 완패를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팔레스타인 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몸으로 체득할 것이고 "양심적 방법"의 모색에 들어가겠지요.

이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안썼으면 좋겠어요. 저는 "폭력은 유일한 길"이라는 말을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랍 민중 중에서는 예컨대 더처럼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글로, 노래로, 춤으로 음악으로, 무엇으로든간에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아랍인도 인간이다, 아랍인과 평동하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즉,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의 무도함에 맞서는 방법은 충분히 비폭력적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랍인" 전체로 봐서는 지금 무장 항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토를 달기가 힘듭니다.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저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현실입니다. 이미 파시즘과 많은 면에서 닮아간 시온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인의 다수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스탈린그라드"가 역사적으로 필연적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답답한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ps. 박노자 씨 글을 퍼왔다. 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던 wsws(내 블로그 오른 쪽 편에 링크된..)에 대한 설명도 있었고, 언젠가 한번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서다. 나는 박노자 교수의 이번 글을 대부분 지지하는 편인데. 어떠한지?

02 January, 2009

2008 지나고 2009 오다.

2009년이다.
보통은 12월 말께에 대강의 한해를 정리했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인하여 못하고 말았다.
08년에 깨나 큰 사건 사고가 있었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주목할만한 개인적인 일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신년에 하지 않았던 신년계획같은 것도 한 번 해볼까 한다.
물론 거기에 금연이나 금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작심삼일의 계획은 넣지 않을 계획이다.

2008년 일들.
나름 베스트 10이랄까 5.. 머 이런 식의 숫자 붙이기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생각나는 순으로 적어봄.
1. 결혼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생각도 코딱지의 때만큼 들지만 나름 결혼 준비를 하면서 보낸 시간이나 결혼을 한 후에 총각으로서는 해야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깨나 썼다.
좋게 보면 익숙치 않았던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짧게 경험한 결혼생활이고, 어차피 이런 일들이야 2009년, 나아가 평생 해야 할 일들이니 무엇이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결혼으로 인해 큰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변화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도 잘한 일 중에 하나다.
여튼 결혼으로 내가 크게 바뀌었다고 할까. 달라졌다고 할까. 머 그런 것 중에 하나는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이 부분을 생각하느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통은 집에 오면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낮에 생각했던 보고싶은 영화도 보곤 했는데 우선 집에 가면 와이프가 있으니 이런저런 깊은 생각하기도 쉽지 않고, 서로 부딪히는 부분에 대해 나도 분명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총각 때는 마음에 따라 며칠 씩 하지도 않던 청소나 설겆이를 이제는 해야 하고,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 것들이 나름 불만이라고 한다면 미처 좋은 것이라고 의미를 둘 수있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 작아보일 수 있는데 돌이켜보면 분명 좋은 일인 것이다.
2. 팀장이 전출되다.
좋던 싫던 자그만치 7년을 같이 해오고, 지시를 받아오던 팀장이 저 멀리 발령이 나서 바로 윗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지금 팀장하고는 마찰이 거의 없을 뿐더러 업무처리도 지난 팀장보다는 훨씬 나아서 일하는 것이 많이 쉬워졌다. 그럼에도 내 업무는 더 바쁘게 되었는데 기존 팀장의 자리를 지금 팀장이 완벽하게 메꾸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우리 회사 시스템 상 사장이 직접 나를 찾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팀 분위기는 좋아진 듯 하였으나 신임 팀장 6개월 통증이라고나 할까? 12월에는 신임 팀장이 과거 팀장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름 신입과 팀장의 중개를 하였으나 큰 소용이 없는 듯 하며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머랄까 팀원과 팀장의 중간에 선 느낌으로 일을 했고, 분명 12월 사태 이후로 팀내 나의 위치가 어떤 것일까 하는 고민,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등이 많아졌다. 시키는 일만 하던 나이가 이미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승진을 한 지금도 아직 고민 중.
3. 여행
2008년에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자그만치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중 한번은 신혼여행. 한번은 도쿄, 한번은 타이베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곳을 다녔는데 머랄까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만 했을 뿐 정말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잘 몰라 어리둥절.
시간은 빨리 가고 여행기간도 2박 3일이니 그저 유명한 투어리스트 스팟에만 갔다오는 게 고작이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며 너무 많은 것을 와이프에게 맞긴 것도 큰 실수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저런 일들, 비행기표나 호텔 예약이랄까. 또는 가장 중요한 가야할 곳들을 선정하는 일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영화제가 즐거운 것은 누구 말마따나 그 시간표를 짜는데 있는 것처럼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그 짧은 시간 내에 어디를 어떤 동선으로 최소의 비용을 들여가며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나는 어떤 것을 기대하고 꼭 보아야겠다고 느끼는 건지 생각조차 안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가니 결국 쓰는 돈은 많아지고, 즐겁다고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여행은 여권을 지저분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고로 다음에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정말 많은 공부를 하여 떠날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문득...
4. 촛불
09년 1월 1일 0시를 이명박 타도를 외치며 맞이했다. 그렇게 08년이 지나고 09년을 맞았다. 5월부터 참가한 촛불집회는 개인적으로 정치에 대해 피상적으로 갖고 있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바꾸어주었다. 혁명이랄까. 파시즘이랄까. 광우병이랄까. 국개론(?)이랄까. 그런 부분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던 기회였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었던 적은 없지만 민주화가 점차 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엄청난 후퇴를 한 것이나,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정말 바보천치 멍텅구리들만 모일 수도 있구나 하는 웃음, 정말 국민은 개ㅅㄲ인가 하는 생각, 이 나라를 좋아하지만 이민가는게 나에게 이득이라고 와이프와 이야기한 것들, 그냥 확 내가 폭탄을 짊어지고 저들 앞으로 가야만 하나 라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5. 경제
9월부터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다 이놈의 미친정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봄에는 광우병에 대해 공부를 시키더니 이제는 경제다. 지금껏 관심을 가져보지 않던 부분인 경제를, 이 놈의 나라가 망해가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아고라 경방에서 한동안을 살았다. 9월부터 미네르바를 알았고, 열광했던 한 사람이었다. 운이 좋게 회사에서 시행하는 무료 독서 교육에 경제 부문을 선택함으로써 2달간 경제관련 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했고, 2권의 경제학 책을 추가로 구입하여 읽고 있으며, rss feed를 통해 이른바 인터넷 경제 고수의 글을 매일 구독했다. 아직 몇개월 되지 않는 초보라 많이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이놈의 정부가 개판친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또한 경제학 공부가 조금 어렵긴 해도 재미도 조금 있어서 꾸준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중에 재테크를 통해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은 공부한 내용을 모의 실험을 통해 확인해보고 있는 중이다. 머 역시 쉽진 않다.

2009년 계획, 혹은 레졸루션
1. 절약
너무 뻔한가. 그런데 결혼 후 절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 결혼 후에는 나만의 행동으로 절약이 될 수 없다. 가치 판단에 대해 한 사람이 더 끼어들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때가 자연스레 많아진다. 자세한 목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더 고민해야 할 듯.
2. 아이
결혼 전에 이야기한 계획이 올해 여름쯤 아기를 갖는 것이었으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3. 공부
위에서 말한 경제 공부를 더.. 목표는 모의투자 성공률 50% 이상.
게다가 1월 주말에는 4시간씩 바리스타 교육이 있다. 에스프레소 입문반, 회사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것이긴 하지만 업무와 그닥 상관없고, 나중을 생각해보니 이런 것쯤 알아두워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울 회사에서 나홀로 신청했고, 결국 어떤 사람과 둘이 수강하게 되었다. 잘 하든 못하든 최선은 다할 것.
4. 회사
이건 정말 헷갈리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회사 밥을 많이 먹어서일까. 회사에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받는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책임이 많아지니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니 또한 이기주의, 좋게 말하면 부하직원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닥치는 일은 스스로 잘 처리하자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글을 썼던 것도 같은데 회사에서 좋아하는 인간이 된다는 바로 그것.
그것이 훗날 생각할 때 유익할 지 불리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올해 계획 중 하나.
5. 영화
글쎄 영화로 해야할 지 문화생활이라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관심있는 분야의 책이라도 샀었을 터인데 경제학 책으로 종목 변경을 했더니 점점 힘들다. 차를 타고 다니고, 게다가 부모님 집에 갈 일도 많지 않아 씨네21을 볼 기회도 없고, 인터넷을 하자니 feed되는 리더에는 온갖 황당무계한 당정청 뉴스 뿐이라 관심 갖기가 어렵다. 특히나 최근 두어달은 무슨 영화가 언제 어떻게 개봉하는지도 모르게 극장에 올랐다가 내려가니 나도 참.
세부 계획은 일주일에 한번은 컴터로 영화보기. 모아놓은 영화가 너무 많다. ㅋ 그러기에 앞서 우선 와이프에게 이 5번 레졸루션을 공개해야 함. ㅋ
6. 수영
4년째다. 얼마전 썼던 포스트에도 있듯 거의 수업을 하지 않는 레벨까지 왔지만 내게는 수영을 잘 하니 못하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이후 일주일에 3번 정도 수영을 나갔는데 올해는 4번이상 나가야 겠다.
7. 마지막 와이프한테 좀더 잘 할 것.
잘 한다는 의미를 어떻게 생각할 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말을 툭툭 뱉는 안좋은 버릇이 있어 이런 것이 와이프한테도 종종 그렇게 된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지만 말로 인해서 와이프 삐치게 하는 일을 올해의 반 정도로만 줄여도 많이 성공한 것 아닐까.

ps. 하루만에 생각하고 쓰고 나니 무엇인가 빠뜨린게 있지 않은가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글을 두번 쓴다는 건 찌질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