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June, 2009

마더

올해 본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똥파리와 더불어 최고다. 박찬욱과 같이 미장센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더 큰 매력이다. 적어도 그만한 관심을 이야기에 쏟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혜자가 화장장에서 넘어지자 치매 할머니가 느닷없이 등장하여 막걸리 통을 휙. 던져버리는 그 씬(아마도 컷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은 거의 최고다.
또한 스릴러 영화를 보며 그깟 작은 영화적 도구에 이처럼 긴장한 것은 히치콕 영화 이래 몇번 느껴보지 못한 불안함이었다. 그래서인가 깐에서는 봉준호를 히치콕에 비유하기도 했단다.
"모정은 사랑의 최고 형태로 항상 절대화된다. 물론 모성은 숭고하다. 그러나 숭고에는 이면이 있다. 아름다운 바위도 뒤집어 들추면 시커멓고 축축한 흙에 처박힌 면이 드러나고 벌레들이 우글거릴 수 있는 것처럼 숭고를 살짝 뒤집으면 순식간에 어둠과 광기에 도달할 수도 있다."
영화의 주제는 이렇다. 어머니의 광기어린 사랑. 우리 도준이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런거야. 라고 했던 엄마가 진실을 알고선, 종철이라는 애가 도준이보다 더하다는 걸 알고선 엄마가 소리내에 크게 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때가 가장 슬프다.
"모자 관계는 가족 내에 형성되는 네벌의 관계- 모자, 부녀, 모녀, 부자- 중 특별하다. 네 관계 중 두 세트가 이성의 조합인데, 부녀 관계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정자로 매개되니까 어딘가 간접적인 반면에 엄마는 아들과 몸 안에서 본디 합쳐져 있었던, 신체적으로 독보적인 관계다. 섹스가 페니스가 자궁으로 들어오는 행위라면 모자 관계에서는 아들의 몸 전체가 엄마의 몸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놓지 못했던, 답답할 때 뻥뚫어준다는 그 엄청난 침술을 스스로에게 사용할 때, 바로 침을 맞는 곳이 치마를 걷어올린 허벅지 안쪽이라는 사실은 또하나의 단서이다.
첫장면의 미친 듯한 그 춤과 마지막 버스 안에서의 그 춤은 같지만 다르다.
솔직히 영화의 끝은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그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준이 쥐어준 그 침통을 받아든 엄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언젠가 스스로 진실을 기억해낼 테니까.

박찬욱과 비교하면서 봉준호의 영화적 장치가 박찬욱에 비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그렇지않다. 예를 들어 일본식 건물에서 한복을 팔고 뽕작과 바흐를 틀어놓고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하는 분위기 보다는 눈이 이쁜 얼굴 반쪽을 보여주다가 얻어터진 반쪽 얼굴을 보여주며 도준이라는 사람에게 있는 선과악을 표현하는 것이 더 내게는 맞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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