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January, 2009

체인질링

설연휴 첫날 아침 혼자 부시시 일어나 소복히 쌓인 눈길을 달려 극장으로 갔다. 간만에 4천원에 영화를 봤는데 체인질링 이었다. 이스트우드 할아배의 최신 영화가 나온 뒤에 보는 약간은 늦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해야만 했었는가 하는 나름의 의심과 할아배의 성품은 역시나 곧고나 하는 마음을 보았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언짢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머랄까 정치적인 부분. 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 또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솔직히 체인질링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를 다시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서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 면모가 이스트우드 할배를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와중에 진보의 면모를 선보이는 것을 누구도 알고 있지 않은가. 밀리언달러 베이비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행하는 코치 혹은 유사 아버지의 행동은 옳고 그르다의 문제는 분명 아니며 꽤 진보적인 모습인 것이다.
체인질링에서도 부담스러운 씬이 있었는데 연쇄살인마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 굳이 들어가야 했겠는가를 곱씹어봤을 때 죽기 싫어 발버둥치는 모습이 그 씬의 목적일 수도, 혹은 클로즈업한 콜린스 어머니의 "죽어도 싸다"는 눈빛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씬은 이율배반적이다. 아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도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 씬이 영화속 인물들에게 있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래서 영화의 처음이 true story라고 당당히 밝히지는 않았을까.(이스트우드 빠돌이 분위기.ㅋ)

스토리라인만 들었을 때는 이 영화를 굉장히 극적으로, 또는 굉장히 엽기적으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하며, 신파적인 분위기가 되어도 무방할 때조차도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저 20년대 싱글맘이 아들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만을 따라간다. 아무말 없이 눈물만을 흘리기도 하며, 당당히 서명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도 한다. 과연 이스트우드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 감독의 첫 여자 이야기. 그란토리노를 빨리 보고 싶다.

여튼 이 영화가 2009년 1월 한국에서 개봉을 하여 나를 포함한 이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느꼈을 것. 바로 1920~30년대의 미국과 2009년의 한국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지금의 한국이 70년 전의 미국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70년전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었고, 여성차별이 존재했으며,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였다. 물론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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