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October, 2008

멋진하루

결혼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마음같아서는 혼자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를 보러 아트시네마로 달려가야했지만(마눌님 허락받음) 러닝타임도 그렇거니와 결혼 2주차에 혼자 영화보러갔다는 것도 좀 그렇고해서(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까) 추천받은 '멋진하루'를 보았다.
하정우와 전도연이 나온다는 사실과 감독이 이윤기라는 사실 이외에는 전혀 알지 못하고 봤다.
영화는 좋았다.(너무 간만에 영화를 본 탓인가?)
전작의 이윤기는 여자의 마음을 그렸다. 머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여기에 나름 남자의 마음 또한 비춰졌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당연히 이윤기의 것이라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게다가 멋진 장면 또한 압권.
맨 처음 전도연을 찾고 따라가는 장면이랄지 건물 위에서 찍은 아반떼의 부감숏. 이 컷은 맑은 날 저녁무렵(아마도 영화상으로는 오전이겠지만)의 그림자가 죽인다. 하정우와 전도연이 건물에 비쳐 걸어내려오는 장면 또한 좋다. 종종 등장하는 그런 난데없는 컷은 나름 영화의 흐름에 맞겨두어도 될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느리게 느리게 감정을 잡아내는 그것은 영화가 2시간이 훌쩍 넘음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구석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나름 좋았던 것은 서울을 돌아다니면 찍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로서는 영화의 동선이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서울에서 그런 멋진 곳을 찾아, 혹은 좋은 장소에서 멋진 시간을 기다려 차분한 영화를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둘이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서 이곳이 진정 서울임을 느낄 수도 있다. 전작에서 미국의 한국여자를 그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윤기에게 공간, 그들이 있는 그곳의 의미가 색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남의 잘나가는 여자사장, 술집여자, 문제가 있는 후배부부, 어떤 일인지 알 수 없는 이혼녀, 오토바이족. 하정우가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하정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이 서울을 메꾸고 있는 그들의 모습 또한 서울을 보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전도연이 하정우에게 느끼는 감정이 주제여서 그런 것일까.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도 힘들 그 모습이 너무 차분하다. 또한 자동차 CF를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은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동안의 만남에서 지난 1년을 알아간다는 약간은 진부한 이야기가 이윤기의 손을 거쳐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나아가 그 둘을 관객이 알아가게 되는 조용하지만 즐겁고, 때로는 슬픈 연출은 깨나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느끼게 해준다.


ps. 정말 간만에 영화에 대해 글을 썼다. 쓰면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타이핑을 하고 있는 도중 내가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볼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귀찮은 것 같기도 하고(이건 정치이야기 쓸 때가 더 흥분된다는 의미다), 영화보는 관점이 살짝 비틀어진 것 같기도 하다.영화를 보면서 약간은 정치적으로 본 것 같은데 그것을 글로 쓰려니 스스로 어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말했던 강남의 여사장, 술집여자, 이혼녀, 오토바이족, 황당한 후배부부.. 그들에게서 충분히 정치적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그건 이 영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닌 거다.
아무래도 감을 키우기 위해 집에 있는 디브이디를 조금씩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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