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씬. 김혜자가 걸어와서 그 희한한 얼굴 표정으로 춤을 출 때. 정확히 그것이 한 컷이었는지 거억은 나지 않는.
넓은 벌판의 김혜자는 마치 무엇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약간의 부감샷과 지미집을 이용한 듯한 자연스런 움직임은 어색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에서 같은 장소에 엄마가 도달했을 때는 그 컷이 없다. 그러니까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증인을 죽이고 난 후의 엄마는 그저 피가 묻은 손을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이병우가 연주한 같은 음악에 아마도 같은 춤을 추었을 장면은 너무도 불안하다. 차를 따라가며 핸드헬드로 찍었을 것이며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실루엣으로 촬영했다. 게다가 넓은 벌판과 비교하여 너무 좁은 버스안, 유리창 속에 갇힌 사람들. 넓은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은 너무 불안했다.
영화를 두번 째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영화가 주제로서는 모성이라는 데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글에 간단히 썼듯이 종팔이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엄마가 이 영화의 표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내내 잊어버리려는 사람과 잊지 않으려는 사람, 기억하려고 하나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준은 그저 정신지체이지만 모든 것을 잘 잊는다(잊는 것이 정신지체의 특징이 아니다). 엄마는 관자놀이를 지압하면 기억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도준은 계속 기억을 더듬지만 엉뚱한 기억만 해낼 뿐이다. 그는 쉽게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때는 놓쳐버리지만 결국 기억해낸다.
문아정은 기억을 하려고 한다. 핸드폰에 찍힌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문아정이 죽은 이후 문아정의 모든 씬이 플래시 백인 것은 관객에게 거꾸로 돌아가 다시 기억해내자는 감독의 표현이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엄마는 잊으려고 한다. 증인을 죽이고 진실을 감춘다. 그 이상한 춤을 추며 잊기를 원한다. 아마도 아버지였을 도준이 옆의 사진을 찢고, 도준이 박카스 농약을 기억했을 때는 "아니야. 아니야!"라며 영화상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어딘가에서 읽은 이 영화가 절망적이라는 이야기. 그 절망감은 기억하고자 했던 사람이 죽어버리고(아예 영화의 처음부터)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데서 나오는 것일테다.
친구가 마더를 보고 내게 보낸 짧은 문자는 노통이 생각난다는 것. 당시에는 음..그런가..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분명해졌다. 지금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너무도 슬픈 세상에, 지독히도 절망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진실을 잊으려고 하고, 진실을 덮으며, 다른 누구보다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 2009년 6월 현실과 끔찍하게도 똑같다.
그럼에도 봉준호는 진실은 언젠가 다시 생각나며 떠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마지막의 불안한 느낌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 술을 진탕마시고 변기를 잡고 토할 때 문득 떠오르는 5살 박이 도준이와 같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