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June, 2009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
그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과거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다. 살아남은 자에게 과거의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것이 가족이라면 아마 이러할 것이다. 영화는 단 한번의 플래시백도 없이 그 커다란 이야기를 아주 작게 풀어낸다.
아마도 10년이 넘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 각자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이야기를 간직하고 그 이야기를 말하지 않으며 슬퍼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가끔 사소한 일들로 알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누구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료타의 아내는 끝까지 그 비밀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언젠가 어머니처럼 그 비밀을 말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의 그 이야기는,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툭 던지지만 그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준페이가 죽고 10년도 넘은 시간, 어쩌면 몇년도 더 살지 못할 그 즈음에 료타를 업고 갈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건 아마도 이전에도 료타가 명절에도 잘 오지 않으며, 오더라도 그렇게 자고 간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며, 같이 살고 싶어하지 않는 딸이 없고, 그래도 집은 료타에게 맡길 생각을 하는 그 저녁 식사이었기 때문아닐까.
2시간이나 되는 소소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상황을 설명하는 연출도 대단하거니와 그 2시간이 지겹지 않게 하는 어머니의 연기가 너무 탁월하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진진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가감없이 표현하는 어머니의 연기로 인해 영화가 더욱 빛을 발한다.

26 June, 2009

Brushes - ipod touch application



아이팟 터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장점 중의 하나가 어플이다. 무료도 있고 돈을 내고 구입할 수도 있다. 그제 5달러나 주고 구입한 brushes라는 어플은 고스톱보다 비싸긴 하지만 훨씬 재미있다.
하루에 하나씩 벌써 2개나 그렸다.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서 배운 기술이란 것이 정물화에만 그쳐 그림이 다 저런 식이 될 것 같고 앞으로의 난관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자랑 삼아 포스팅함.

마이클 잭슨 사망

"I am absolutely devastated at this tragic and unexpected news," said Quincy Jones, a longtime friend of Jackson's and producer of his “Thriller” album. “For Michael to be taken away from us so suddenly at such a young age, I just don't have the words. ... I've lost my little brother today, and part of my soul has gone with him." from MSNBC.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결혼을 두번이나 해서 이혼했다는 둥,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아동학대 관련으로 잠수했다는 둥, 발코니에서 아이를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미국 방송사도 대단.

여튼 그의 음악을, 전부는 아니지만 좋아했던(앨범을 구입했었던) 사람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17 June, 2009

근황

몇명이 이곳에 와서 나의 글을 읽겠냐마는 왠지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남김.
1. 회사일이 갑자기 몰렸다. 인터넷 하기가 쉽지 않다. RSS로 쌓이는 포스트가 몇백개가 넘어가니 읽지 못한 채로 지워버리기 일쑤. 쥐새끼와 일당들이 요즘 특히나 지랄하는데 내코가 석자다.
2. 작년에 출판되었단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덕분에 평일에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2시간은 족히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책을 볼 때는 간혹 끊겨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읽을만큼만 읽어도 상관없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나의 20대가 너무나도 평범하게 지나온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대충 96년부터 05년까지. 대뇌에서 성기까지 라고 말한 김연수(혹은 황지우)씨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으니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더 생각해야 겠다. 책도 다시 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20대가 정리되면 아마도 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 책을 읽을 때 새로 구입한 앰프와 스피커를 사용하고자 음악을 틀어놓는데 책을 읽을 때 들어야만 하는 음악이라 선곡이 쉽지 않다. 집에 있는 씨디를 보니 들을만한 건 영화음악 뿐이다.(아무래도 책을 읽으려면 멜로디를 따라할 수 없는 음악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튼 어떤 음악이던지 스피커가 좋음을 느낀다.
4. 마지막. 와이프가 임신을 했다. 한 5주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회사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곧 아비규환이 된다고 한다. 몸이 힘들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냥 몸만 피곤해질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09 June, 2009

마더-두번째 관람

첫 씬. 김혜자가 걸어와서 그 희한한 얼굴 표정으로 춤을 출 때. 정확히 그것이 한 컷이었는지 거억은 나지 않는.
넓은 벌판의 김혜자는 마치 무엇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약간의 부감샷과 지미집을 이용한 듯한 자연스런 움직임은 어색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에서 같은 장소에 엄마가 도달했을 때는 그 컷이 없다. 그러니까 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증인을 죽이고 난 후의 엄마는 그저 피가 묻은 손을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이병우가 연주한 같은 음악에 아마도 같은 춤을 추었을 장면은 너무도 불안하다. 차를 따라가며 핸드헬드로 찍었을 것이며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실루엣으로 촬영했다. 게다가 넓은 벌판과 비교하여 너무 좁은 버스안, 유리창 속에 갇힌 사람들. 넓은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은 너무 불안했다.
영화를 두번 째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영화가 주제로서는 모성이라는 데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글에 간단히 썼듯이 종팔이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엄마가 이 영화의 표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내내 잊어버리려는 사람과 잊지 않으려는 사람, 기억하려고 하나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준은 그저 정신지체이지만 모든 것을 잘 잊는다(잊는 것이 정신지체의 특징이 아니다). 엄마는 관자놀이를 지압하면 기억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도준은 계속 기억을 더듬지만 엉뚱한 기억만 해낼 뿐이다. 그는 쉽게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때는 놓쳐버리지만 결국 기억해낸다.
문아정은 기억을 하려고 한다. 핸드폰에 찍힌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문아정이 죽은 이후 문아정의 모든 씬이 플래시 백인 것은 관객에게 거꾸로 돌아가 다시 기억해내자는 감독의 표현이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엄마는 잊으려고 한다. 증인을 죽이고 진실을 감춘다. 그 이상한 춤을 추며 잊기를 원한다. 아마도 아버지였을 도준이 옆의 사진을 찢고, 도준이 박카스 농약을 기억했을 때는 "아니야. 아니야!"라며 영화상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어딘가에서 읽은 이 영화가 절망적이라는 이야기. 그 절망감은 기억하고자 했던 사람이 죽어버리고(아예 영화의 처음부터)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데서 나오는 것일테다.
친구가 마더를 보고 내게 보낸 짧은 문자는 노통이 생각난다는 것. 당시에는 음..그런가..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분명해졌다. 지금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너무도 슬픈 세상에, 지독히도 절망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진실을 잊으려고 하고, 진실을 덮으며, 다른 누구보다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 2009년 6월 현실과 끔찍하게도 똑같다.
그럼에도 봉준호는 진실은 언젠가 다시 생각나며 떠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마지막의 불안한 느낌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 술을 진탕마시고 변기를 잡고 토할 때 문득 떠오르는 5살 박이 도준이와 같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02 June, 2009

마더

올해 본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똥파리와 더불어 최고다. 박찬욱과 같이 미장센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더 큰 매력이다. 적어도 그만한 관심을 이야기에 쏟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혜자가 화장장에서 넘어지자 치매 할머니가 느닷없이 등장하여 막걸리 통을 휙. 던져버리는 그 씬(아마도 컷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은 거의 최고다.
또한 스릴러 영화를 보며 그깟 작은 영화적 도구에 이처럼 긴장한 것은 히치콕 영화 이래 몇번 느껴보지 못한 불안함이었다. 그래서인가 깐에서는 봉준호를 히치콕에 비유하기도 했단다.
"모정은 사랑의 최고 형태로 항상 절대화된다. 물론 모성은 숭고하다. 그러나 숭고에는 이면이 있다. 아름다운 바위도 뒤집어 들추면 시커멓고 축축한 흙에 처박힌 면이 드러나고 벌레들이 우글거릴 수 있는 것처럼 숭고를 살짝 뒤집으면 순식간에 어둠과 광기에 도달할 수도 있다."
영화의 주제는 이렇다. 어머니의 광기어린 사랑. 우리 도준이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런거야. 라고 했던 엄마가 진실을 알고선, 종철이라는 애가 도준이보다 더하다는 걸 알고선 엄마가 소리내에 크게 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때가 가장 슬프다.
"모자 관계는 가족 내에 형성되는 네벌의 관계- 모자, 부녀, 모녀, 부자- 중 특별하다. 네 관계 중 두 세트가 이성의 조합인데, 부녀 관계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정자로 매개되니까 어딘가 간접적인 반면에 엄마는 아들과 몸 안에서 본디 합쳐져 있었던, 신체적으로 독보적인 관계다. 섹스가 페니스가 자궁으로 들어오는 행위라면 모자 관계에서는 아들의 몸 전체가 엄마의 몸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놓지 못했던, 답답할 때 뻥뚫어준다는 그 엄청난 침술을 스스로에게 사용할 때, 바로 침을 맞는 곳이 치마를 걷어올린 허벅지 안쪽이라는 사실은 또하나의 단서이다.
첫장면의 미친 듯한 그 춤과 마지막 버스 안에서의 그 춤은 같지만 다르다.
솔직히 영화의 끝은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그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준이 쥐어준 그 침통을 받아든 엄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언젠가 스스로 진실을 기억해낼 테니까.

박찬욱과 비교하면서 봉준호의 영화적 장치가 박찬욱에 비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그렇지않다. 예를 들어 일본식 건물에서 한복을 팔고 뽕작과 바흐를 틀어놓고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하는 분위기 보다는 눈이 이쁜 얼굴 반쪽을 보여주다가 얻어터진 반쪽 얼굴을 보여주며 도준이라는 사람에게 있는 선과악을 표현하는 것이 더 내게는 맞는다는 것.

13년 개근

USA today 기사
가디언 기사
미국 인디애나 주 Terre Haute에 사는 한 여학생이 유치원을 포함하여 고등학교까지 1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출석했다며 여기저기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

모 블로거는 "그럼 나는?" 이라고 반문했는데. 예전같이 개근상이 대단한 일이었을 때는 많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학교보다 학원에 다니는 사람이 더 많고 무슨 현장 실습이니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학교 안나와도 되는 일이 많으니 그닥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직 개근상 받는 사람은 많겠지?
나도 13년 개근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