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November, 200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보는 것보다는 영화를 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내게는 편하다. 영화도 보면서 혹은 보고 난 뒤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하고, 세상 저편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못된 선택에 극장 문을 나서며 욕을 하기도 하고, 심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도 그러하다.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미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뒤덮은 책들이란 처세에 관한 혹은 재테크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건 마치 명절 연휴에 하릴없이 극장에 들렀다가 16개관에서 달랑 6개의 영화만 하고 있는 상황에 마주치거나, 그리고 상영하는 그 영화들이란 스펙타클과 돈으로 치장된, 그러니까 결국 극장 문을 나서며 욕을 하게 될 듯한 영화뿐이라는 사실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추천해준 책들이 전부다. 수만가지의 영화 중 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되겠지만, 이것은 적어도 위에 쓴 것과 같이 내가 영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을 갖고 있어서이겠지만, 책에 있어서는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역시나 책을 읽음에 있어 스토리 위주로 읽혀지는 나의 버릇이 아직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슨 예술을 대하는 방식은 통한다. 혹은 더 나아가 모든 예술은 통한다. 영화를 보듯이 문자 하나하나에 눈을 꽂아놓고 읽을 만한 나의 여력이 아직 없음을 알고 있으며, 조금씩이나마 고전을 읽는 것도 다른 관심에 대한 나름의 관심이을 키우기 위함이다..

김연수에 열광하던 성홍에게 추천받은 이 책은 대단했다. 고전이 아닌 현대물을 읽는 내가 이리도 집중했던 적은 아마 없었다. 그의 문장과 생각은 이미 내가 어렴풋이 느끼던 것을 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이야기가 아닌 이 소설을 구조를 보았고, 그 구조가 갖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작가를 통해 들었으며, 몇몇 문장은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회사를 다니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길에서 힐끗 보았던 사람의 얼굴이 머리 속에 기억나는 하찮은 일까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에 의해 이 세계가 만들어지며 이 세계는 다시 우리들에 영향을 주어 인생을 뒤흔들어버리고, 또 다시 우리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그러한 일들이 내 주위에서 내게서 일어난다. 미처 우리가 알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부술 수 없는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다. 나의 과거가 책 속 인물들과 같이 그러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러한 확신이 이 책으로 인하여 허물어져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겠지만, 확신이 무너져버리는 곳에서 우리들의 차이란 무엇인가.


지난 주말에 나는 장률의 경계를 보았다. 그 영화는 사람들간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주인과 방문자, 어머니와 아들, 군인과 민간인, 자연과 사람까지.. 그들의 경계가 허물어져 버린다. 창호는 마지막 팔을 뻗고 빙빙도는 예의 그 시선으로 큰 길을 본다. 창호는 더이상 걷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우연이 또 있을까. 책 속 '나'가 느끼는 가치관의 혼란이 경계라는 단어로 드러났을 때 내가 바로 며칠 전 "경계"라는 영화를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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