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May, 2007

Nobody knows

My colleague in company told me about the Koreeda Hirokazu's film, Nobody knows. in 2005 I watched it in a theater 4 times. Nobody knows, Be with me(by Eric Khoo) are the best films of the year.
I searched my article about nobody knows, and attach here.

엄마는 아이들을 버리고 자신의 작은 행복을 찾아 떠난다. 영화는 엄마가 떠난 6개월동안, 남은 4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엔 비정함도, 분노도, 자책감도 없으며 그저 한 발자욱 물러선 버려진 어린이의 삶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클로즈 업을 하는데 감정 이입을 허락치 않는다. 물론 꿈틀하는 손가락과 다 벗겨진 메니큐어를 보며 눈물을 훔치긴 했지만, 그리고 재차 볼 때에는 트렁크에 넣은 유키의 발에 빠알간 슬리퍼를 신겨줄 때에도 그러했지만 전체적으로 감정 이입은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아이들을 버린 엄마를 포함하여 누구 하나 나쁜 사람없고,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첫화면, 아키라가 땀으로 뭉친 머리카락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장면은 멀리 떨어진 타인의 시선이며, 그리고 나서의 창문에 비친 사키의 얼굴은 아키라의 시선이다. 타인은 아키라의 트렁크에 무엇이 담겨있는 지 알 리가 없으며, 아키라 또한 사키의 얼굴을 보는 것인지 검은 밖의 풍경을 보는 것인지(아니면 그 아무 것도 아닌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나 역시 그들을 알지 못한다. 바로 옆집의 사람이 누구인지, 몇명이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건 현대 사회의 문제이며, 이 문제에 대해 이 영화로써 담론을 이끌어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가 그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네 자매의 엄마 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클로즈업과 멀리서 넌지시 보는 듯한 롱샷으로) 보여줌으로써 너무나도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우리는 그저 감동을 받는다. 아키라는 너무 어른스럽지만 유키의 죽음 앞에 울지도 못하고, 결국 흙을 한 줌 던지고 난 후 손을 부르르 떠는 아이다. 그리고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온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정도이다. 쿄꼬는 다 벗겨진 매니큐어를 보며, 남겨진 어머니의 옷냄새를 맡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혹은 오래 동안 자리를 비웠던 엄마에게 '정말 어디 다녀왔어요?'라고 물은 것을 되내이며 자신으로 말미암아 엄마가 떠난 것은 아닐까 자책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시게루와 유키는 엄마와 아키라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일 뿐이다. 유키의 죽음 이후 유키를 대신할 사키가 이들과 함께하며 시게루가 마지막 뒤를 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떨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결국 여기까지만 보여줄 생각이었다.
시게루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리고 동시에 화면이 멈춰섰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게루는 분명 나를,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시게루의 시선을 뒤로 미루고 자리를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그 아이들에 대해 가여움을 느끼고, 또한 주위를 한 번 둘러볼 생각을 했다면 아마도 그것으로 충분할 듯 싶다. 아마 감독 또한 여기까지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ps.
아키라는, 좋아했던 사키가 주는 돈을 뿌리치고 거리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 장면은 내게 그리도 아련하였다. 마치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숨이 터질 듯이 달리고 달렸던 아키라가 가로등 앞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무릎을 짚으며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그와 동시에 물러나는 카메라는 흡사 바닷가 앞에서 옆으로 패닝을 하던 그것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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