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March, 2009

약간의 수정

2007년 1월에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벌써 2년이 넘어버렸다. 2년 동안 같은 외관을 하고 있던 블로그였다. 나이가 들자 외관이라는 것이, 특히 블로그와 같은 것이라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은 회사에서 시간이 많았다. Rss feed도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니 이런 저런 서핑을 하다가 결국 블로그에 손을 대보았다.

제목이 있던 부분의 사진은 5~6년 전에 선유도에서 양평동 방향 쪽으로 저녁이 되기 전에 찍은 굴뚝 사진이었다. 이번에는 언젠가 까페에 꽂혀있던 장미꽃으로 바꿨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이어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있는 내가 찍은 사진 중 가로로 긴 사진이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설명을 써넣는 곳이 있는데 바꾸었다. 예전에는 그냥 영화(대부분 아시아영화), 여행, 내 삶에 대해 글을 쓴다고 했는데 Fucking mb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블로그 모양새가 좀 바뀌었다. 그래서 추가했다.

애드센스는 이미 예전에도 쓰고 있었다. 오늘 기록을 확인하니 Total Earnings $13.37 이라고 뜬다. 초기에 친구들이 광고 클릭을 많이 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고맙다. 2년 새 구글 코리아가 생기면서 애드센스가 바뀌었다. 개의치 않았는데 나도 한번 벌어볼까 생각으로 광고를 우측 메뉴 아래과 최신 글 바로 아래에 추가했다. 예전 애드센스는 내 블로그의 글을 분석해서 가장 비슷한 단어를 배열해주었는데 지금은 막무가내인 것 같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플리커 뱃지의 사진을 줄였다. mid-size로 했었는데 사진이 생각보다 커서 약간 민망한 느낌이랄까. 풍경이라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내얼굴 보는 건 작은 게 낫다.

바꾸고 나니 왠만한 것 괜찮은데 포스팅한 글의 줄간격이 가까워 글을 읽기 어려워보인다.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못찾겠네.

워낭소리

워낭소리가 관객 50만을 돌파했을 때 봤어야 했다. 100만이 넘어버리자 워낭소리에 대한 글이 인터넷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이신문을 들쳐봐도, 세상에 4대 일간지에서도 워낭소리에 대한 글이 있었다. 난 영화를 보기 위해 그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들리는 이야기는 '너무 슬프다', 혹은 '잘 만들었다', '재미있다' 등 칭찬 일색.
기대감에 부푼 나머지 보게 된 워낭소리는 무엇인가 이상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딸랑거리는 워낭의 소리. 그 소리가 내게는 너무나 거슬렸다. 심지어 그 소리가 동시 녹음의 소리가 아니라 후시라는 느낌이 들었고, 자세히 보자 그 소리는 역시 나중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넣은 소리였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소가 비춰지는 컷이 나오면 여지없이 들리는 그 소리는 거의 쇄뇌의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것이 마치 영화인가 다큐인가 하는 느낌 또한 계속되었다. 영화는 소가 죽은 다음 플래시백으로 과거 몇년전부터 다시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끝은 신기하게도 처음 시점이 아닌 소가 죽고 난 다음이다.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처음에 할아버지가 워낭을 들고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 회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그게 이상한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 구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옆에서 와이프는 울고 있는데 정신이 없다. 슬플만한 겨를이 없다. 후에 씨네21의 정한석과 허문영의 글을 보았다. 허문영은 지아장커의 24시티를 빌어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의 눈물 컷에 대해서는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거의 전적으로 허문영의 글에 동의한다. 글을 읽고 나니 마치 플래시백 이후는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헛생각도 든다.

허문영의 말을 빌어 나조차도 환청과 환상에 헤메게 하는 영화랄까..

원문보기

ps. 글을 쓰고나니 너무 인색한듯. 몇몇 컷은 정말 뛰어나다. 파아란 논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컷이랄까. 우리나라 시골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은 정말 이 영화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정말 "한국적"이라는데 왠지 모를 고마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25 March, 2009

도쿄소나타

절규를 본 것이 언젠가.. 아마도 2006년. 그러니까 깨나 시간이 흘렀다. 한사코 공포와 두려움의 주제를 풀어오던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를 보기 전 저 아름답기한 포스터 뒤에 어떤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알려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기요시 감독이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바뀐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나와 리플렛을 보며 역시 마케팅을 가족영화로 하고 있군. 이라고 생각할 때 무엇인가 다르긴 달랐던 것이다. 분명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진 않는 것 같다. 결국 권위의 상실이 가져오는 가족의 파괴, 그 과정.
평생직장과 같은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류헤이. 같은 신세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지만 그가 자살하자 있는 자존심은 다 포기하고 쇼핑몰 청소부로서 작업복을 입는다. 작업복을 입은 채 와이프를 만나자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 그에게 천만금의 돈이 생긴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집에 다시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와이프는 집에서 계속 외면당한다. 튀김을 해도 먹지 않고, 도너츠를 해도 먹지 않는다. 허공을 팔을 뻗어보지만 역시 허공뿐이다. 하루에 단 몇분도 볼수 있을까한 첫째 아들이 이혼을 하라고 말해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강도는 새로운 탈출의 계기다. 낯선 남자, 그것도 강도를 본의로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 일은 역시 꿈만 같은 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들이 미군에 입대하는 건 기요시 감독의 어쩌면 군대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듯. 그럼에도 엄마의 꿈에 죽음으로 등장하는 꿈속 장면은 역시 기요시만의 센스 같다는 생각.
문득 피아노가 치고 싶어져 급식비를 땡까고 피아노를 배우는 둘째 아들. 학교에서도 튀는 만큼 집에서도 튀려다가 아버지가 밀쳐 머리를 다치고선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던 녀석이 작업복을 입고 들어온 아버지에게는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니 그날 따뜻한 햇살의 아침은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삶이라지만 그래도 둘째 아들의 신동과 같은 피아노 실력에 류헤이 가족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피아노를 칠 때 모여드는 사람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뜻한 오후(아마도) 햇살까지.

처음으로 돌아가 첫 장면이 바람에 의해 날리는 종이와 책장들의 트래킹샷, 그리고 오즈야스지로의 시선과 유사한 정지화면을 뚫고 나타나는 엄마, 그리고 비바람이 들이치는 창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그 컷.
삶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비처럼 집안으로 들이닥쳤다가 문을 닫아 걸레로 깨끗이 치우기도 하지만, 가끔은 창문을 다시 열고 싶은 것이지.

약간은 변한 듯한 기요시의 영화가 다음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가 정말 궁금해진다.

ps. 야쿠쇼 코지의 등장으로 영화가 웃겼다. 하지만 그가 마치 귀신인양 사라졌을 때는 그 강도를 맡을 만한 사람이 야쿠쇼 코지라는 것을 알았다.

[펌] 연역법과 귀납법

중세가 끝나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되는데, 하나는 "경험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경험론 (empiricism)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합리론 (rationalism)이었습니다.

경험론의 시조는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려면 세상을 잘 관찰하고, 그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진리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관찰만 하는 사람을 개미 (모으기만 하니까), 관찰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을 거미 (자기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니까), 그리고 관찰을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을 꿀벌 (꽃에서 모은 단물로 꿀을 만드니까)에 비유했죠 . 그에 비해 프랑스의 철학자 르데 데카르트는 "진리의 확실한 기초"를 찾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기초 위에 논리적으로 건축한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가 찾아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는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습니다. 즉, 나는 영화 매트릭스 속의 인간처럼 환상의 세계를 참된 세계로 믿고 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을 하는 이상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이죠.

우리는 경헙론과 합리론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인의 중요한 특징은 no-nonsense, 즉 헛소리를 싫어하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상식에 잘 맞는 사고를 하기 위해선 현실을 벗어나면 안되고, 그러기 위해선 생각을 먼저 하고 관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먼저 하고 관찰의 결과에 근거해서 생각을 해야죠. 그에 비해 프랑스인은 현실에 얽매이기 보다 이상에 맞는 세계를 건설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표현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는데,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영국은 지금까지도 귀족제도가 남았는데, 프랑스는 빠른 시일 내에 신분의 차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험론은 귀납법 (inductive method)에 의존을 합니다. 귀납법은 관찰에서 시작해 결론을 나중에 내리는 방법입니다. 그에 비해 합리론은 연역법 (deductive method)에 의존하죠. 연역법은 확실한 명제에서 시작해, 논리적으로 파생해 나가는 방법이죠. 귀납법의 문제는 관찰만 하다간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진정 관찰에 의존해서 결론을 내리려면 세상의 모든 케이스를 다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하기 마련이죠. 따라서 몇 가지 샘플만 놓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관찰에 의한 결론"이 아니라, "관찰자가 임의로 선정한 샘플에 의한 결론"이기에 경험론에 충실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역법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맞는 말 같아도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면 공산주의가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곧 무너지고 공산주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는 너무도 논리적인 말이라 현실은 당연히 논리를 따라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금, 마르크스의 논리적인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경험론과 합리론, 귀납법과 연역법의 대결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기에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에서는 합리론과 연역법이 훨씬 강세로 보입니다. 귀납법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현실은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합리론자들은 미래에 대해 대단히 자신있게 예측을 합니다. 몇년 전에 골드만 삭스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BRICs로 묶어서 "이 네 나라가 몇십년 안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리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죠. 골드만 삭스가 점쟁이도 아니면서 이 나라들의 미래를 예측한 근거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합리주의자들은 논리를 근거로 하면 자잘한 현실의 변화를 뛰어 넘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최근 화제를 모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철저하게 경험론의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블랙 스완은 경험론자였던 데이비드 흄이 들었던 예인데, "눈에 보이는 백조가 모두 흰 색이라고 해도, 세상에 검은 백조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이 말은, 관찰만 해서는 일반론을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미래가 이럴 것이다"는 식의 절대적 예측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실제로 유럽인들이 호주를 발견한 후,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끄는 원인은 최근 예상 밖의 경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많이 나왔지만, 작년 9월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이러한 예측이 하나 같이 어긋났고, 이처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끈 것이지요.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예상을 하다가는 꼭 크게 틀리기 마련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요즘이야 말로 "경제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 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꼭 논리적인 근거를 덧붙이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그래,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예측이니 분명히 맞겠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현실이 논리적인 예측에 맞게 움직이리라는 것은 합리론의 망상입니다. 언제보다 합리론의 권위가 떨어진 지금, 합리론에 근거해서 예측을 너무 믿으면 안되겠죠.

지금 상황은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가장 잘 맞춘 외국의 저자들도, 경제 위기와 함께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은 하나같이 틀렸습니다. "미국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달러화는 반대로 초강세를 보일 것이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맞을 수 없었던 것이죠. 앞으로도 경제에 대한 예측은 많이 나오겠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린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말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cimio님의 글

18 March, 2009

그랜토리노

지난 주말에 그랜토리노를 보았다. 체인즐링을 본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랜토리노라는 영화일 때는 더욱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체인즐링보다 나는 그랜토리노가 좋다. 잘 모르는 과거의 미국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체인즐링에서는 차가움과 냉정함의 기운을 느꼈다면 그랜토리노에서는 따뜻함과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랜토리노는 월터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72년산 포드의 자동차 이름이다. 한국전에 참가하고 포드를 다녔던 사람, 집에는 그랜토리노가 있지만 그것을 타지는 않는 폴란드 이민자 월터. 그야말로 늙은이 구닥다리 보수주의자다. 백인들은 다 떠나는 마을에 계속 남고, 이웃들은 동양인이거나 멕시코 사람들. 가족들은 한낱 사소한 이익만들 바란다. 그런 이 세상에 월터가 생각하는 건 그저 스스로 지켜왔던 그 어떤 가치를 지키며 스스로 살아가는 것. 거기에 가족조차 들어갈 자리란 없다.
그런 그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는 동네 불량배에게 당하는 옆집 동양 아이(수와 타오 모두!)를 구해준다. 이것을 인연으로 월터는 옆집 사람들에 대해, 혹은 이웃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월터는 자식보다 이웃의 동양인들이 자신을 더 이해한다고 진실을 말하게되고, 결국 갱들과의 승부다.
잠깐 언급했지만 고지식한 미국인이 동양인을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변하는 계기는 당연히 두 동양아이를 구해준 것이지만 이른 바 말하는 선행과는 다르다.
자신의 마을에 흑인이 설쳐대는 꼴을 보지 못하는 더티해리의 마음이고, 동양인들이 자신의 땅에 들어와 싸우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것들은 다르다고 언제나 느끼는 사람이다. 이탈리언 바버, 혹은 아이리쉬 건축업자는 모두 친구. 하지만 동양인과 흑인에는 마음을 열지 못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그랜토리노를 타오에게 주는 건 결국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웃에 살던 그 사람들 모두 미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토요타가 판치는 세상에 그랜토리노와 같은 사람이 내민 손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바로 이스트우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지막 타오가 그랜토리노를 타고가는 장면은 어색하다. 옛 영화에서만 보이던 옛 스타일의 미국 차와, 동양아이의 조화. 그 조화가 지금은 어색하지만 앞으로는 나아질거라 이스트우드는 믿는다. 그래서 마지막 컷에서 나는 그랜토리노가 지나간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ps. 이스트우드 할배가 늙었다고 그 포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손가락 총으로 사람들을 겨눌 때의 그 모습은 너무 멋지다. 멋지다 못해 환장할 정도.

05 March, 2009

Sun rise


Sun rising
Originally uploaded by junsang, stanley, whatever.

지난 주말 동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들어 처음 쉬는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3월 1일 첫해를 추암에서 맞이했다.
그저 떠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고, 나름 즐거웠지만 피곤했다. 게다가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