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휴가 겸 간만의 해외 여행으로 상하이를 다녀왔다. 07년 12월 29일 부터 31일까지.
그리고 지도에 자그맣게 보이는 극장을 찾아내고, 구경을 하다가 지금 상영 중인 영화가 왕가위의 최신작 마이블루베리나이츠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 즉시 겨우 3일의 일정 중에서 몇시간을 이 영화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더 좋은 극장에서(물론 가격은 매우 비쌌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보았다. 다행이도 영화는 더빙되어 있지 않은 채 중국어 자막으로 나왔다.
참고로 마이블루베리나이츠는 왕가위의 영화이지만 크리스토퍼 도일이 카메라 감독을 하지 않았으며, 모든 대사는 영어이고, 그 장소는 미국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내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동으로 차 있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크리스토퍼 도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조금은 낯설었다. 특히 네바다 장면은 빔벤더스의 느낌이 조금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의 예의 수평 트래킹은 대사를 알아 듣지 않고서라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으며, 다시 살아난 스텝프린팅은 나를 깜작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바로 홍콩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지금껏 영화를 찍으며 홍콩을 배제한 적이 없었다. 홍콩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홍콩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해외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해외에서 보는 입장에서 영화를 찍었다. 그러니까 해외에서 영화를 찍긴 하는데 배우는 온통 백인이기에 밀려오는 이 궁금증을 어떻게 그는 해결해줄까... 그것이 나의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며 벅찬 가슴을 진정하고 있을 때에도 무엇인가 이상했다.
왕가위는 이 영화에서 홍콩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서울에 돌아온 며칠 뒤 회사에 밤에 남아 영화를 복기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로 인해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왕가위의 수평 트래킹이 멋진 건 그저 아름답게 카메라를 수평 이동시켜서가 아니다. 그 카메라에 담긴 화면 안에는 또 다시 프레임이 있거나 거울이 있거나 유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왕가위의 사랑에 대한 표현이다. 아비정전, 화양연화, 2046 및 여러 영화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사랑. 사랑은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다가갈 수 없는 건 그들이 당시의 홍콩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그 곳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고백할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해 왕가위는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직접 마주할 수가 없다. 그들의 시선은 유리에 가로 막혀 있거나 창틀에 의해 가려지고, 굴절되며, 거울에 반사된다. 그 엄청난 여백은 슬픔의 여백인 것이다.
그런데 마이블루베리나이츠에서는 반갑게도 그러한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다. 역시 그들은 서로 좋아하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 그런데... 그런데 제레미(쥬드로)는 왕가위의 규칙을 깨고 키스를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왕가위의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황하게 된다. 그건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고 있던 왕가위의 표현은 다 흔들린다. 창에 의해 굴절되고 가려지고 반사되는 그들의 시선. 10년 전에 사용했던 스텝 프린팅. 그 모든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감독의 선택이 아닌 그저 멋있게 보이려는 하나의 스타일로 전락해버린다. 베스가 뉴욕을 떠나 여행을 하며 보낸 편지는 다행스럽게 모두 제레미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베스는 다시 돌아온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마치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왕가위가 해놓은 장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두려워졌다. 왜 그가...
더이상 홍콩에 관심이 없어져서??
이런 이유 말고 난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지아장커가 스틸라이프에서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을 버리게 될 때까지 걸렸던 그 어려움(세계)이라고 생각한다. 왕가위는 꼭 다음 영화에서 내가 미처 생각치도 못했던 저 먼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의 영화를 다시 기대한다. 그래서 다시 기대한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배우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며, 그 결과로 칼에 찔리지도 총에 맞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털털거리는 자동차를 사는(큰소리까지 지르면서) 베스, 옛 애인을 멋지게 보내주는 제레미. 레슬리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듯 하다. 레슬리와 베스가 헤어지는 장면은... 그래 정말 멋지다. 더 위대한 영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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