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May, 2010

영화 두 편

몇개월 만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두 편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초봄에 즐비하였으나 그건 볼 수 없었다. 다행이 칸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두 편을 어제 볼 수 있었다. 시, 그리고 하하하.
영화를 보는 관점이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왜.라는 질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관심이다. 많은 영화는 그 대답이 재미를 위해서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런 영화를 보고나면 구역질이 난다. 하하하는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건 내가 아직 홍상수를 이해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원래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그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적절히 배합하여 보여준다. 그래서 새롭고 재미있다.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다른 느낌이랄까. 언제나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새로웠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식상했다.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방문까지.. 장소와 배우만 바뀌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주밍은 이제 홍상수만의 것이 되었지만 더이상 새롭지는 않다. 단 한번, 거지를 잡아낼 때의 엄청난 주밍은 매우 놀라웠다. 대화를 하던 사람에서만 나타났던, 관객을 환기시키던 느낌이 달라지긴 했다. 대신 말장난이 늘었다. 그것이 사투리와 배우의 재능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홍상수 영화의 상황이나 인물이 가져다 주는 것을 가리는 부분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보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고 좀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시는. 보면서 울컥하는 부분이 많다. 명실상부 이제 이창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다. 윤정희는 인터뷰에서 미자의 캐릭터가 실제 자신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고, 스스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윤정희의 실제 이름도 미자이다) 그래서일까 무엇인가 어색할 법도 한 그 캐릭터가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고 게다가 거기에 감정이입도 된다.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세번 그 감정을 내보인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운동하랬다고 친구같다던 딸에게도 숨기던 사람이 욕실에 숨어서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한번, 문화교실에서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며 한번, 손자에게 이불을 잡아당기며 왜 그랬어 라며 또 한번.
그는 계속해서 가슴속의 이야기를 시로 써내려고 어떻게하면 시상을 얻을 수 있는 지, 시를 쓸 수 있는지 묻는다. 죽은 아이가 있었을 곳을 돌아다니며 그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드디어 시를 쓴다. 중간 중간 생각나는 시상을 메모하는데 그것이 화면 전체에 글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곳은 희진이가 갔었을 곳에서였다. 메모장이 글이 아닌 빗방울로 채워졌을 때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마지막 시를 완성했을 때 미자는 희진이로 바뀌어있다. 바닥에 떨어진 살구를 '보고', '베어물고' 느끼고 쓴 메모는 몸을 던져 다음 생을 준비한다 이다. 경찰이 손자를 데려간 다음날부터 미자는 사라진다. 하지만 그 사라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느껴진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보며 던지는 질문인 왜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원인을, 첫째 주인공의 과거나 트라우마에서 찾거나 둘째 그가 처한 사회로 돌릴 때가 대부분이다. 시는 영화의 마지막이 그것을 설명해준다.
ps. 최문순 의원이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고 좀 찾아봤더니 노무현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개연성이 있어보이긴 하다. 경찰이 아이를 데려가는 꼬라지가 영장도 없이 낚아 가는 지금의 경찰과 꼭 닮아있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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