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September, 2009

세계의 끝 여자친구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세계가 변했다.
어젯밤 김연수씨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다 보았다.
"고통에 대해서 직접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죠. 소설은 단지 작가가 아는 고통을 이야기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내가 죽음을 예감하는 그 권투선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난 소설로 쓸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읽는 회사 친구가 내게 '왜 넌 책을 많이 보는 건 아닌데 김연수에 열광하냐'라고 물었을 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었다. 위의 인용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같은 욕망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난 권투선수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나의 20대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연수에게 91년과 92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내게도 어느 한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때가 나의 세상이 망가지는 지점인지 새롭게 태어나는 지점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진부한 단어, 소통.
짧지만 내가 김연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바로 이것이다.
ps. 출근하여 소설의 한 문장을 인용하려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검색해보니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순히 멋있는 문장이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해와 다른이의 이해가 그 한 문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18 September, 2009

바쁜 9월.

나이가 먹어가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다. 이번 달 말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자그만치 2개나 겹쳐 있어서 정신이 없다. 지난 포스팅이후 이번 달에는 글쓰지 힘들 것 같았는데 황당한 일이 너무 많다.
첫째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다. 일본 민족학교에 동화책을 전달하고 선행을 베풀던 사람을 사찰했다. 70년대 80년대 간첩만들기가 떠오른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사라졌다고 하던데 붙잡았던 대위의 노트에는 올 1월부터 날짜가 시작된단다.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 정권의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다.
둘째 노동연구원장의 발언. 노동연구원은 국가연구소이다. 그 노동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인간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그따위 인간이 노동연구원장이었으니 이 나라 노동계가 이모양 이꼴이다. 쥐쌕 정부 출범 후 거의 2년이 다되어가는 기간동안 노동계를 죽이기 위한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써댔을까. 세계적으로 쪽팔린 일이며, 이 새끼의 발언을 빗대어 개인적인 소신으로 이런 새끼들은 헌법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셋째 인천공항철도가 철도청에 넘어갔다. 장사안되는 일 그냥 두는 것보다 정부가 운영하는게 낫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과정과 이후의 일일것이다. 특혜중의 특혜로 소문난 공항철도가 철저히 개박살 난 후 그 책임을 그 누구도 묻지 않고 철도청이 싸인을 한 것이다. 당시 관계자는 공항철도 사장 등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다. 개발 시작전 예상한 승객의 단 7%만이 이용하는 공항철도. 그 적자 수준이 엄청나다. 그걸 철도청이 떠안으면 수십배의 승객이 들어올까. 그 적자는 고스란히 철도청이 짊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정부는 철도청이 그 적자수준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민영화한다고 한다. 그 의미는 그냥 들어도 철도청의 민영화다. 이미 적정가격의 60~70%로만 요금으로 받고 정부 지원금을 받는 철도청이다. 왜냐고. 그건 국책사업이니까. 어차피 수익이 나지 않는 철도청에게 수익율 운운한다는 얘기는 적정한 기준으로 정책을 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4대강 사업을 수자원공사가 떠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돈 안쓰고 공기업의 재정적자 악화를 빌미로 민영화. 그리고 어떤 대기업하나가 그걸 잽싸게 잡아채 떼돈 버는 시나리오.
넷째 박원순 희망제작소 소장이 국정원으로부터, 아니 대한민국으로부터 2억원 소송을 당했다. 명예훼손이라는데 명예훼손은 국정원으로부터 당하는 국민이다. 앞뒤가 뒤바뀐 황당 소송으로 후에 길이 남아 티브이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도 나올만한 일이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 나오는 고위공직자 위장전입 등의 도덕성 문제. 이건 솔직히 많이 화가 나는 부분인데 애초 쥐새끼부터 도덕성 문제는 생각도 않았었다. 그리고 2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매 인사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가 나왔던 부분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만 하면 무엇하랴 잘못인지 알면서도 저지르는 수많은 돈많은 새끼들이 나라의 행정을 주무르고 법을 만들고 있다. 전과 14범, 기소 횟수 30번 이상의 쥐새끼가 그들 머리 위에서 괜찮다고 하는 나라니까. 거기에 언론은 똑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대고 있다. 노통 시절에는 죽어도 안된다는 위장전입 등에 대해 너그러워야 한다느니하는 개소리만 지껄여대고 있다. 그건 딴나라당 족속들도 마찬가지 언제나 이중잣대 들이대는 씨박것들 땜에 화딱지가 난다.
국민은 지금 2007년 12월의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 지 뼈속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지금 즐겁다고 희희낙낙하는 것들은 대기업, 뉴또라이, 돈많은 족속들 뿐이다.
내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일천황을 초청한다는 쥐새끼의 머리통에 박수! 짝짝.
ps. 회사 친구와 그 아래 여직원의 마찰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둘 다 따로 떼놓고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 둘이 같이 생활하니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내 주위에 나를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지 돌아보는 계기인 것 같다.

01 September, 2009

배우 장진영 사망

놀란 소식을 접한 건 작년 이맘 때로 기억한다. 배우 장진영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기사였다. 생각해보니 1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사망 기사가 났다.
내가 본 그의 영화는 청연이 마지막이었는데 당시는 내가 필리핀에 있을 때여서 청연에 대한 소란을 알지 못했다. 돌아와 청연을 보고서 느낀 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논란이었다는 일색(日色) 어쩌고 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옛사람을 연기하는 그녀의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고, 과장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2006년에 거북하지 않게 멋졌다. 그래서 싱글즈 보다는 청연의 장진영이 내겐 더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와서야 다시 느끼는 슬픔. 이제 그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옛날 정은임씨가 라디오에서 했던 이야기의 변주. 당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