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January, 2009

체인질링

설연휴 첫날 아침 혼자 부시시 일어나 소복히 쌓인 눈길을 달려 극장으로 갔다. 간만에 4천원에 영화를 봤는데 체인질링 이었다. 이스트우드 할아배의 최신 영화가 나온 뒤에 보는 약간은 늦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해야만 했었는가 하는 나름의 의심과 할아배의 성품은 역시나 곧고나 하는 마음을 보았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언짢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머랄까 정치적인 부분. 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 또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솔직히 체인질링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를 다시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서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 면모가 이스트우드 할배를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와중에 진보의 면모를 선보이는 것을 누구도 알고 있지 않은가. 밀리언달러 베이비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행하는 코치 혹은 유사 아버지의 행동은 옳고 그르다의 문제는 분명 아니며 꽤 진보적인 모습인 것이다.
체인질링에서도 부담스러운 씬이 있었는데 연쇄살인마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 굳이 들어가야 했겠는가를 곱씹어봤을 때 죽기 싫어 발버둥치는 모습이 그 씬의 목적일 수도, 혹은 클로즈업한 콜린스 어머니의 "죽어도 싸다"는 눈빛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씬은 이율배반적이다. 아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도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 씬이 영화속 인물들에게 있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래서 영화의 처음이 true story라고 당당히 밝히지는 않았을까.(이스트우드 빠돌이 분위기.ㅋ)

스토리라인만 들었을 때는 이 영화를 굉장히 극적으로, 또는 굉장히 엽기적으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하며, 신파적인 분위기가 되어도 무방할 때조차도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저 20년대 싱글맘이 아들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만을 따라간다. 아무말 없이 눈물만을 흘리기도 하며, 당당히 서명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도 한다. 과연 이스트우드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 감독의 첫 여자 이야기. 그란토리노를 빨리 보고 싶다.

여튼 이 영화가 2009년 1월 한국에서 개봉을 하여 나를 포함한 이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느꼈을 것. 바로 1920~30년대의 미국과 2009년의 한국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지금의 한국이 70년 전의 미국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70년전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었고, 여성차별이 존재했으며,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였다. 물론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지는 것이다.

08 January, 2009

Flickr 사진

작년 10월부터 플리커에 사진 올리는 방법을 flickr uploader를 사용했더니 설정이 다른 사람들은 볼수 없게 되어 있었다.
-_-;
나야 맨날 로그인을 하니 모든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미처 알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동안 올린,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사진은 부산에 갔었던 사진, 도쿄에 갔었던 사진, 그리고 얼마전 타이베이에 갔던 사진들로 약 150여장이 될 듯하다.

실수였지만 여튼 복구해놓았으니 구경 한번 오시길.

토정비결로 본 2009년 나의 총운

인유구연 우래조력이라,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우연히 다가와 돕는도다. 용이 천문을 열으니 구름이 걷히고 비가 내리는 운이로다. 금년에는 남쪽과 북쪽에 길한 운세가 들었고 귀인이 나타나 도울 것이며 바라던 뜻을 이룰 수 있겠다. 그러나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은 운세이니 운인들 이 조화를 어찌 막으리. 명산에 가서 액을 막고자 기도하라. 금년의 신수는 뒤로 갈수록 길하므로 움직이면 꾀하는 만큼 구할 것이고 귀인이 나타나는 수가 들었으므로 이는 마치 구름 같이 많은 수의 벗이 나를 돕는 운세. 사람들에게 평소에 베푼 은덕이 비로소 공이 되어 나에게로 오니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다. 재물은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해이니 분수껏 도리를 지키며 구할 때 비로소 내 곳간에 쌓이는 괘. 아울러 년초에 정성을 신에게 드리면 더욱 길하리라.

1월의 운세
운수가 대길하니 백 가지의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이 달에는 더욱이 귀인이 나타나는 달이므로 가만히 있어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겠고 헛된 일 중에서도 나에게는 내실을 기하는 실상을 얻게 되는 좋은 괘로다.

2월의 운세
분수를 지키고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서 도리에 맞게 생활하면 반드시 그 중에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남쪽으로 가면 길하니 그곳에서 사업을 벌이면 성공하게 되리라. 그러나 부부의 사이가 좋지 못한 달이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3월의 운세
하늘에서 기름진 이슬을 내리니 땅에서는 단 샘이 나오도다. 오곡이 풍성한 가운데 의식은 넉넉하리라. 이 달에는 귀인이 항상 나를 도우므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경영하는 일도 순조롭게 풀려 갈 것이다.

4월의 운세
옛것을 지키고 안정하면 그 가운데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말을 믿고 전업을 한다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도리어 해가 있으니 허황한 욕심을 버리고 처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라.

5월의 운세
운수가 형통하므로 가정에는 길함이 들어 평화로운 운수. 영신이 나를 도우니 도처에 재물이 있고 바라던 일을 이룰 수 있다. 만일 혼인하지 않으면 횡재하여 재록을 쌓을 수이니 풍요로움이 떠나지 않는다. 봄바람에 방초가 나부낀다.

6월의 운세
재록이 일어나는 달. 이곳 저곳에서 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애써서 구하지 않아 도 자신을 만족한 자리에 앉게 된다. 풀이 푸른 강가에서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운세이니 얼마나 평화롭고 한가한 일인가. 늘 화기로운 기운이 머무도다.

7월의 운세
이름을 사방에 떨치게 될 운이 왔으므로 관록이 몸에 따르고 많은 사람이 나를 추앙하며 따른다. 재물을 많이 모으게 되고 부유함 속에서 권력을 쥐게 되니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럽지가 않은 괘로다.

8월의 운세
허욕을 탐하지 말라. 길했던 운세도 도리어 재앙으로 바뀔까 봐 두렵도다. 액을 막기 위해서는 명산에 들어가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하겠다. 이 달은 위험이 도사리는 달이므로 특히 매사를 침착히 행하라.

9월의 운세
훈훈한 봄바람이 한창이니 도처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고 염원하던 일을 이루어 희색이 만면하리라. 만일 재물을 얻지 못하면 자손에게 경사가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된 좋은 달이다. 뜻밖에도 크게 재물을 모아 가산을 늘리리라.

10월의 운세
설사 먼저는 잃는다 하여도 노여워 말라. 머지 않아 도리어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운세. 귀인이 나타나는 달이므로 반드시 성공한다. 성심껏 노력하면 일년 신수 중 가장 크게 성공할 달임을 각별히 명심. 심는 대로 거두는 법!

11월의 운세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촛불을 얻게 되는 좋은 운. 재운이 들었으므로 항상 일이 형통하겠고 반드시 큰 재물을 얻게 되니 이는 하늘에서 내려 주는 복락인지라 어느 누구도 당할 자가 없도다.

12월의 운세
분수 밖의 것을 탐하지 말라. 도리어 불리! 이 달에는 목성을 조심해야 하겠다. 이를 어기고 함께 동사하면 손재수가 따르므로 내 것을 잃은 뒤 후회하는 일이 생기리라. 분수를 지키고 겸손히 행동하면 그 가운데 복락이 깃들이리라.

나참. 이렇게 좋으면 더 부담되는데.

출처 : 역술닷컴(무료 토정비결)

05 January, 2009

"국제주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 읽는 사이트 중의 하나는 www.wsws.org 입니다. 트로츠키주의 사이트인데, 시야가 넓고 자본주의 세계의 주요 경향들을 잘 짚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트로츠키주의"라 하면 "다함께"와 같은 조직들이 맨 먼저 떠오르지만, 제가 말한 그 사이트에 의하면 "다함께"의 모태인 영국의 사회주의노동당은 단지 "기회주의적인 개량주의자"들이랍니다. 그러니까 본인들의 주장으로는 그것보다 더 왼쪽이라는 이야기지요. 뭐,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혁명"을 실천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은 사회주의노동당이나 그 www.wsws.org나 마찬가지지만, 사회주의노동당 같으면 매우 폭넓은 "통일전선" 전략을 추구하여 그 주의를 꼭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사안별로 연대하지만, www.wsws.org 는 "독야청청", 양보없는 "트로츠키주의 사상적 순수혈통"을 자랑합니다. 그거야 저로서 일종의 "좌파적 위정척사"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정체, 사회의 이면들을 잘 폭로해주는 기술을 www.wsws.org으로부터 충분히 배울 만합니다. 그래도 썩어빠진 이 세게에서 그러한 독자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부터 고마운 일이죠.

www.wsws.org가 이번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도살 작전을 어떻게 보는가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입니다. 이 분들이 똑똑하게도 "양비론"으로 빠지지 않고 하마스 아닌 도살자 이스라엘에만 이 사태에 대한 주된 책임을 추궁하는 동시에 "아랍 대중들과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연대된 사회주의적 투쟁, 그리고 중동의 사회주의적 혁명과 중동에서의 사회주의적인 연방 건설"을 주문했습니다 (http://www.wsws.org/articles/2008/dec2008/pers-d30.shtml). 그걸 읽으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질 뻔하네요. 지금 아랍인 학살을 이미 지상에서도 시작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세요, 지금 저지르는 악행을 회개하세요, 그리고 사회주의로 개종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손을 잡고 착한 사회주의적 투쟁에 나가세요"를 말하는 격인데, 이건 말하자면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강도에게 "일제중생들이 실유불성인지라 참회하여 이런 악업을 저지르지 마오, 도반이 되자"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어찌 보면 참 선한 일이 아닐 수야 없지요. 이상적으로야 강도가 칼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강도에게 설법하는 것은 좋은 일일 테고, 아랍인과 유태인들이 계급형제가 되는 것은 중동 문제의 가장 근원적 해결임에도 틀림없지요. 이상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도적을 만난 영재스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여러분들께서 설법을 듣고 참회하여 칼을 던진 도적을 많이 보셨어요? 이스라엘군인들이 www.wsws.org를 열독한 뒤에 자동총을 던져 계급투사로 업종변환할 가능성은, 러시아 스킨헤드들을 모스크바에서 만난 부랴트 자치공화국 학생이 그들에게 부처님과 악업, 선업, 윤회를 이야기를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도를 벗어나게끔 할 가능성만큼이나 미미합니다. 뭐, 도력이 높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도력이 높은 사람들을 여러 분들이 많이 보셨나요?

피해자가 가해자를 설득하여 회개케 하고, 나아가서 "공동체"를 이루는 길... 참 이상적인 해결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쎄, 저만해도 예컨대 서울의 뒷골목에서 어떤 젊은이가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아!"라고 하면 아마도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생계 때문에 이러는 것이죠? 그렇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우리가 같이 나누고 앞으로 서로 도와주면서 삽시다. 어려운 입장이라곤 알겠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면 당신도 크게 나아질 일 없고, 그 다른 사람도 어렵게 되니 우리는 그렇지 말고 윈윈 전략으로 합시다". 일단 시도는 당연히 해볼 것입니다. 뭐, 싸우거나 돈을 그냥 내놓는 것보다 아무래도 나은 전략일 것 같아서요. 그러나 만약 이 젊은이가 저를 잘 때려 노크다운시킨 뒤에 제 지갑을 그냥 가져가버리면 反폭력주의자인 저라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요? 역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차악"인 국가폭력에 그저 호소할 셈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 폭력에 어쩔 수 없이 호소하게 될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요? 많이 내려잡아도 약 90% 이상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호소할 수 있는 "세계 경찰"이란 없기에 (세계 깡패인 미국에 호소해봐야 득이 없는 건 세상이 다 아니까요) 그들 자신들이 "경찰"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상론은 어떻든간에 현실론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무도극악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은 전체 아랍인 민중들의 연대와 무자비한 무장 투쟁일 것입니다. 그게 개개인의 도덕 차원에서 보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지금 거기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가 않아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지금 국제계급연대주의는 무효다, 폭력적인 민족 투쟁 밖에 대안이 안보인다" 이런 말을 쓰고 나니 이를 고치고 싶은 욕망이 절로 생깁니다. 미미하더라도 이스라엘인들의 - 계급적이든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 개과천선의 가능성을 정말로 찾고 싶은 심정이죠. 그런데 예컨대 역사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1941-45년간의 소독 전쟁을 보시면 독일군이 우세했던 1943년초까지는 독일군인들이 탈영하여 소련측에 넘어가 반파쇼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들이 아주 드물었지만 (예컨대 카렐리아 전선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http://uni-persona.srcc.msu.su/site/authors/djakonov/II.4.htm ).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대첩 이후에 파쇼들의 패색이 짙어지자 특히 옛날 공산당이나 사민당 당원들이 탈영을 해서 반파쇼 전선에 합류하는 일은 훨씬 흔해졌어요. 소련 군인들이 그들에게 "그러면 어떤 경위를 통해 원래 공산주의자 내지 사민주의자인 당신이 파쇼군인이 됐는가?"를 물었을 때에 "1934년, 히틀러가 이기고 공산당/사민당이 패배자임이 드러나자 일단 당원증을 없애고 당원이었음을 숨기면서 살았다"는 답은 보편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파시즘이 승자가 아닌 패자임이 또 분명해지기에 오랫동안 잊어온 사회주의자로서의 양심이 다시 살아난 셈이었습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 칸트가 뭐라 하든간에 - 절대적인 차원은 절대 아닙니다. "양심"과 현실, 즉 현실 속에서의 생존을 추구하는 본원적인 물적 욕망들은 아주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극소수와, 양심만으로 자기 생존을 포기할 만큼 의인 기질이 높은 극소수는 그 숫자는 아마도 비슷할 것이고, 나머지들의 양심 발로의 가능성은 "상황에 따라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인들이 잊어온 양심을 되찾자면, 대체로 그 군대는 일단 한 번쯤 완패를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팔레스타인 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몸으로 체득할 것이고 "양심적 방법"의 모색에 들어가겠지요.

이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안썼으면 좋겠어요. 저는 "폭력은 유일한 길"이라는 말을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랍 민중 중에서는 예컨대 더처럼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글로, 노래로, 춤으로 음악으로, 무엇으로든간에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아랍인도 인간이다, 아랍인과 평동하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즉,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의 무도함에 맞서는 방법은 충분히 비폭력적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랍인" 전체로 봐서는 지금 무장 항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토를 달기가 힘듭니다.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저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현실입니다. 이미 파시즘과 많은 면에서 닮아간 시온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인의 다수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스탈린그라드"가 역사적으로 필연적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답답한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ps. 박노자 씨 글을 퍼왔다. 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던 wsws(내 블로그 오른 쪽 편에 링크된..)에 대한 설명도 있었고, 언젠가 한번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서다. 나는 박노자 교수의 이번 글을 대부분 지지하는 편인데. 어떠한지?

02 January, 2009

2008 지나고 2009 오다.

2009년이다.
보통은 12월 말께에 대강의 한해를 정리했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인하여 못하고 말았다.
08년에 깨나 큰 사건 사고가 있었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주목할만한 개인적인 일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신년에 하지 않았던 신년계획같은 것도 한 번 해볼까 한다.
물론 거기에 금연이나 금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작심삼일의 계획은 넣지 않을 계획이다.

2008년 일들.
나름 베스트 10이랄까 5.. 머 이런 식의 숫자 붙이기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생각나는 순으로 적어봄.
1. 결혼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생각도 코딱지의 때만큼 들지만 나름 결혼 준비를 하면서 보낸 시간이나 결혼을 한 후에 총각으로서는 해야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깨나 썼다.
좋게 보면 익숙치 않았던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짧게 경험한 결혼생활이고, 어차피 이런 일들이야 2009년, 나아가 평생 해야 할 일들이니 무엇이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결혼으로 인해 큰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변화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도 잘한 일 중에 하나다.
여튼 결혼으로 내가 크게 바뀌었다고 할까. 달라졌다고 할까. 머 그런 것 중에 하나는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이 부분을 생각하느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통은 집에 오면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낮에 생각했던 보고싶은 영화도 보곤 했는데 우선 집에 가면 와이프가 있으니 이런저런 깊은 생각하기도 쉽지 않고, 서로 부딪히는 부분에 대해 나도 분명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총각 때는 마음에 따라 며칠 씩 하지도 않던 청소나 설겆이를 이제는 해야 하고,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 것들이 나름 불만이라고 한다면 미처 좋은 것이라고 의미를 둘 수있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 작아보일 수 있는데 돌이켜보면 분명 좋은 일인 것이다.
2. 팀장이 전출되다.
좋던 싫던 자그만치 7년을 같이 해오고, 지시를 받아오던 팀장이 저 멀리 발령이 나서 바로 윗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지금 팀장하고는 마찰이 거의 없을 뿐더러 업무처리도 지난 팀장보다는 훨씬 나아서 일하는 것이 많이 쉬워졌다. 그럼에도 내 업무는 더 바쁘게 되었는데 기존 팀장의 자리를 지금 팀장이 완벽하게 메꾸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우리 회사 시스템 상 사장이 직접 나를 찾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팀 분위기는 좋아진 듯 하였으나 신임 팀장 6개월 통증이라고나 할까? 12월에는 신임 팀장이 과거 팀장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름 신입과 팀장의 중개를 하였으나 큰 소용이 없는 듯 하며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머랄까 팀원과 팀장의 중간에 선 느낌으로 일을 했고, 분명 12월 사태 이후로 팀내 나의 위치가 어떤 것일까 하는 고민,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등이 많아졌다. 시키는 일만 하던 나이가 이미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승진을 한 지금도 아직 고민 중.
3. 여행
2008년에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자그만치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중 한번은 신혼여행. 한번은 도쿄, 한번은 타이베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곳을 다녔는데 머랄까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만 했을 뿐 정말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잘 몰라 어리둥절.
시간은 빨리 가고 여행기간도 2박 3일이니 그저 유명한 투어리스트 스팟에만 갔다오는 게 고작이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며 너무 많은 것을 와이프에게 맞긴 것도 큰 실수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저런 일들, 비행기표나 호텔 예약이랄까. 또는 가장 중요한 가야할 곳들을 선정하는 일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영화제가 즐거운 것은 누구 말마따나 그 시간표를 짜는데 있는 것처럼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그 짧은 시간 내에 어디를 어떤 동선으로 최소의 비용을 들여가며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나는 어떤 것을 기대하고 꼭 보아야겠다고 느끼는 건지 생각조차 안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가니 결국 쓰는 돈은 많아지고, 즐겁다고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여행은 여권을 지저분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고로 다음에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정말 많은 공부를 하여 떠날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문득...
4. 촛불
09년 1월 1일 0시를 이명박 타도를 외치며 맞이했다. 그렇게 08년이 지나고 09년을 맞았다. 5월부터 참가한 촛불집회는 개인적으로 정치에 대해 피상적으로 갖고 있던 내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바꾸어주었다. 혁명이랄까. 파시즘이랄까. 광우병이랄까. 국개론(?)이랄까. 그런 부분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던 기회였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었던 적은 없지만 민주화가 점차 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엄청난 후퇴를 한 것이나,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정말 바보천치 멍텅구리들만 모일 수도 있구나 하는 웃음, 정말 국민은 개ㅅㄲ인가 하는 생각, 이 나라를 좋아하지만 이민가는게 나에게 이득이라고 와이프와 이야기한 것들, 그냥 확 내가 폭탄을 짊어지고 저들 앞으로 가야만 하나 라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5. 경제
9월부터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다 이놈의 미친정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봄에는 광우병에 대해 공부를 시키더니 이제는 경제다. 지금껏 관심을 가져보지 않던 부분인 경제를, 이 놈의 나라가 망해가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아고라 경방에서 한동안을 살았다. 9월부터 미네르바를 알았고, 열광했던 한 사람이었다. 운이 좋게 회사에서 시행하는 무료 독서 교육에 경제 부문을 선택함으로써 2달간 경제관련 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했고, 2권의 경제학 책을 추가로 구입하여 읽고 있으며, rss feed를 통해 이른바 인터넷 경제 고수의 글을 매일 구독했다. 아직 몇개월 되지 않는 초보라 많이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이놈의 정부가 개판친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또한 경제학 공부가 조금 어렵긴 해도 재미도 조금 있어서 꾸준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중에 재테크를 통해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은 공부한 내용을 모의 실험을 통해 확인해보고 있는 중이다. 머 역시 쉽진 않다.

2009년 계획, 혹은 레졸루션
1. 절약
너무 뻔한가. 그런데 결혼 후 절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 결혼 후에는 나만의 행동으로 절약이 될 수 없다. 가치 판단에 대해 한 사람이 더 끼어들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때가 자연스레 많아진다. 자세한 목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더 고민해야 할 듯.
2. 아이
결혼 전에 이야기한 계획이 올해 여름쯤 아기를 갖는 것이었으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3. 공부
위에서 말한 경제 공부를 더.. 목표는 모의투자 성공률 50% 이상.
게다가 1월 주말에는 4시간씩 바리스타 교육이 있다. 에스프레소 입문반, 회사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것이긴 하지만 업무와 그닥 상관없고, 나중을 생각해보니 이런 것쯤 알아두워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울 회사에서 나홀로 신청했고, 결국 어떤 사람과 둘이 수강하게 되었다. 잘 하든 못하든 최선은 다할 것.
4. 회사
이건 정말 헷갈리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회사 밥을 많이 먹어서일까. 회사에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받는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책임이 많아지니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니 또한 이기주의, 좋게 말하면 부하직원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닥치는 일은 스스로 잘 처리하자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글을 썼던 것도 같은데 회사에서 좋아하는 인간이 된다는 바로 그것.
그것이 훗날 생각할 때 유익할 지 불리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올해 계획 중 하나.
5. 영화
글쎄 영화로 해야할 지 문화생활이라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관심있는 분야의 책이라도 샀었을 터인데 경제학 책으로 종목 변경을 했더니 점점 힘들다. 차를 타고 다니고, 게다가 부모님 집에 갈 일도 많지 않아 씨네21을 볼 기회도 없고, 인터넷을 하자니 feed되는 리더에는 온갖 황당무계한 당정청 뉴스 뿐이라 관심 갖기가 어렵다. 특히나 최근 두어달은 무슨 영화가 언제 어떻게 개봉하는지도 모르게 극장에 올랐다가 내려가니 나도 참.
세부 계획은 일주일에 한번은 컴터로 영화보기. 모아놓은 영화가 너무 많다. ㅋ 그러기에 앞서 우선 와이프에게 이 5번 레졸루션을 공개해야 함. ㅋ
6. 수영
4년째다. 얼마전 썼던 포스트에도 있듯 거의 수업을 하지 않는 레벨까지 왔지만 내게는 수영을 잘 하니 못하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이후 일주일에 3번 정도 수영을 나갔는데 올해는 4번이상 나가야 겠다.
7. 마지막 와이프한테 좀더 잘 할 것.
잘 한다는 의미를 어떻게 생각할 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말을 툭툭 뱉는 안좋은 버릇이 있어 이런 것이 와이프한테도 종종 그렇게 된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지만 말로 인해서 와이프 삐치게 하는 일을 올해의 반 정도로만 줄여도 많이 성공한 것 아닐까.

ps. 하루만에 생각하고 쓰고 나니 무엇인가 빠뜨린게 있지 않은가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글을 두번 쓴다는 건 찌질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