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서비스를 이용한지 어언 4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욕도 많이 쓰고 했는데 그건 티스토리나 이글루스 같은 서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트위터로 인해 포스팅 횟수가 많이 줄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블로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구글이 블로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맘에 들지 않는 사실임에는 분명하다. 아이폰이 대중화되었지만 아직도 블로거는 아이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릴 수가 없다. 심지어 전용 어플도 없으니 말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블로깅 서비스를 갈아타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듯 싶다. 그래서 텀블러로 옮기기로 하였다.
불행이도 텀블러는 xml backup을 import하는 기능이 아직 없다. 하지만 좀더 좋은 블로깅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앞으로 블로거에는 글을 쓰지 않고 텀블러에만 포스팅할 예정이다.
주소는 http://junsangs.tumblr.com 이다. 당연히 컴퓨터의 웹브라우저로 접속할 수 있고, 아이폰이나 기타 모바일 가젯에서 브라우저를 이용하여 똑같은 주소로 들어와도 된다. 모바일 페이지에 적합한 틀을 제공해준다.
자, 이제 블로거를 떠나야 할 시간.
nothing
nowadays.. these are almost about fuckin politics or economy of Korea and a few about films, travels, and my life
22 November, 2010
08 November, 2010
계피
계피를 알게 된건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을 들으면서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우리나라 밴드 실력은 다 수준급인데 보컬이 없다고. 그 와중에 계피의 목소리는 신선했다. 게다가 그 가사는 어떠한가. 81~85년 생들로 이루어진 밴드만의 솔직함이 너무 좋았다. 얼마전 브로콜리 너마저 2집이 발매되었으나 계피는 이미 없었다. 작년에 발표된 브로콜리 빵마저를 구입하고 나서 느낀 실망은 컸다(미안!). 더이상 계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곡의 완성도 보다는 계피없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그 색을 잃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얼마 전(10월초) 우클렐레피크닉에서 계피가 노래한 것을 알고 앨범을 구입했는데 그러고난 한달 후 가을방학이라는 밴드로 계피가 나타났다. 알고보니 우클렐레 피크닉은 우클렐레(기타와 비슷한 하와이 전통악기)를 이용해 음악을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받은 따끈한 CD를 지난 주말에 몇번 들었는데 역시 계피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흡사 브로콜리너마저를 떠올릴 법 했다.
그리고 어찌하여 브로콜리너마저 2집의 타이틀곡인 졸업도 듣게 되었다.(세상에 인디밴드가 멜론 순위에 들어오다니!)
졸업은 참 좋았다. 그건 그 가사때문이다. 1집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다만 그들은 2살을 더 먹었다. '2009년의 시간들'에서, 그들은 꿈꾸던 2009년이 다가왔지만(아마도 성인이 되는 해) 두려움이 그득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이제는 다시 졸업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버스에서 졸다가 눈을 떴을 때만큼 시간이 휙 지나가버린 때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다. 역시나 시간은 흐를 것이고, 부디 그들이 미친 세상에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기 바라는 마음이다. 아쉬운 것은 역시나 보컬인데 당연히 계피의 빈자리가 크다. 같이 부른 이에게는 미안하지만(아마도 잔디?) 계피가 졸업을 같이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그리고 내 꿈은 더 나이가 2년 후 브로콜리너마저의 세번째 앨범에서의 계피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계피는 가을방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솔직히 난 그 가사와 계피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 그저 흘려듣는 음악으로서의 감상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지만 곱씹어 듣는다면 역시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동거'나 '속아도 꿈결'을 제외한 나머지 노래의 가사가 모두 사랑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사가 나쁘다거나 사랑 노래가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계피의 목소리와 헤어진 후에 가끔 미치도록 안고 싶어지는 마음과, 봉별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직도 계피의 목소리는 브로콜리너마저 1집의 그것과 같다. 그건 이미 내게 아직 세상에 나가기 전의 목소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다음 앨범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계피의 노래가 이제는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 다음에 "속아도 꿈결"을 부를 때는 지금과는 다르기를 바란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게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금홍이가 부른 창가처럼 계피의 사랑 목소리가 듣고 싶다.
http://autumnvacation.net
얼마 전(10월초) 우클렐레피크닉에서 계피가 노래한 것을 알고 앨범을 구입했는데 그러고난 한달 후 가을방학이라는 밴드로 계피가 나타났다. 알고보니 우클렐레 피크닉은 우클렐레(기타와 비슷한 하와이 전통악기)를 이용해 음악을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받은 따끈한 CD를 지난 주말에 몇번 들었는데 역시 계피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흡사 브로콜리너마저를 떠올릴 법 했다.
그리고 어찌하여 브로콜리너마저 2집의 타이틀곡인 졸업도 듣게 되었다.(세상에 인디밴드가 멜론 순위에 들어오다니!)
졸업은 참 좋았다. 그건 그 가사때문이다. 1집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다만 그들은 2살을 더 먹었다. '2009년의 시간들'에서, 그들은 꿈꾸던 2009년이 다가왔지만(아마도 성인이 되는 해) 두려움이 그득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이제는 다시 졸업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버스에서 졸다가 눈을 떴을 때만큼 시간이 휙 지나가버린 때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다. 역시나 시간은 흐를 것이고, 부디 그들이 미친 세상에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기 바라는 마음이다. 아쉬운 것은 역시나 보컬인데 당연히 계피의 빈자리가 크다. 같이 부른 이에게는 미안하지만(아마도 잔디?) 계피가 졸업을 같이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그리고 내 꿈은 더 나이가 2년 후 브로콜리너마저의 세번째 앨범에서의 계피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계피는 가을방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솔직히 난 그 가사와 계피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 그저 흘려듣는 음악으로서의 감상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지만 곱씹어 듣는다면 역시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동거'나 '속아도 꿈결'을 제외한 나머지 노래의 가사가 모두 사랑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사가 나쁘다거나 사랑 노래가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계피의 목소리와 헤어진 후에 가끔 미치도록 안고 싶어지는 마음과, 봉별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직도 계피의 목소리는 브로콜리너마저 1집의 그것과 같다. 그건 이미 내게 아직 세상에 나가기 전의 목소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다음 앨범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계피의 노래가 이제는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 다음에 "속아도 꿈결"을 부를 때는 지금과는 다르기를 바란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게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금홍이가 부른 창가처럼 계피의 사랑 목소리가 듣고 싶다.
http://autumnvacation.net
11 October, 2010
한라산 산행에 대한 소회
지난 주말 제주도에서 한라산 하이킹을 했다.
다행이 큰 비는 오지 않았고, 가끔 보슬비가 내렸지만 조금 미끄러운 것을 빼면 괜찮았다.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땅만 봐야 했고,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오르는 코스는 어리목코스였고, 해발 1100m 쯤에서 시작했고 백록담은 올라가지 않았(못했)으며, 내가 오른 정상은 윗세오름이었다. 내려올 때는 영실코스로 내려왔는데 둘 중에는 영실코스가 더 괜찮아보인다. 경치가 보다 좋다. 한라산에 이런 기암절벽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Filckr를 참고)
아이폰으로 걷거나 뛰는 궤적을 기록하는 어플이 있어 실행을 했다. GPS를 사용해서인지 배터리가 쉽게 방전되어 하행길은 기록하지 못했다.(아래 그림 참조)
60여명이 산에 올랐고, 나름 무리하지 않기로 해서 항상 후미에서 천천히 내려왔왔는데 그 덕에 근육도 하루만에 풀려 월요일인 지금은 정상이다. 후미에서 쳐진 사람들과 같이 와서인가 산행 가이드와 같이 왔는데 한라산의 식물이며,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 등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제주도는 다섯 번째인데 한라산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집밖에 있을 때는 날씨가 좋아야 함을 느꼈다. 언제 한번 시간이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해발 1700m 이상에 있어보았다.
27 September, 2010
생각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하고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게 생각할 때라고는 괜찮은 책, 읽을거리, 뉴스, 영화를 볼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을 이용한 읽을거리를 제외하고는 그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첫째 문제다. 둘째는 가끔 일어나는 뉴스, 책, 영화를 보고선 생각을 잘 못하게 될 때도 있다. 그건 너무 가끔인 상황에 익숙치가 않아 그저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가장 쉽게 접하는 읽을거리도 문제다. 몇년 전부터 RSS feed를 이용해 몇몇 블로그와 신문등을 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구독 숫자가 늘어,(게다가 구글 리더에서 지원하는 추천피드는 하루에 백여개가 넘는 것 같다) 생각할 시간 없이 그저 눈으로만 따라가기에 바쁜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이런 정보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찾느냐 보다는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얻느냐가 더 큰 관건이 된다. 그리고 그건 마치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마음으로 집의 물건을 버리듯이 수많은 구독 리스트를 삭제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더욱 편하고 더욱 새로운 기술은 스스로를 관리하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다. 기술이란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최첨단으로 나아가도 개인의 정신을 함양하고 정진하는 건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다.
지난 주에는 옥희의 영화와 엉클분미를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만한 건 앞으로 영화에 대해 글을 잘 쓰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데 있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말과 글로 옮김에 있어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건 고스란히 나자신을 향한 글이어야 한다.(아마 거의 아무도 보지는 않았겠지만)
옥희는 마지막에 반복과 차이를 영화로 옮겨보고 싶었고, 결국 영화로 만들었으나 관객인 나는 그 차이와 반복을 고스란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만 했지 그로 인한 그 무엇도 느끼기 힘들었다. 이선균이 결혼한 후에 옥희가 살았던 곳에서 살고있고, 송교수 또한 학교에서 혹은 아차산에서 수없이 차이와 반복을 경험하지만 그들은 나와 같을 뿐이다. 그 차이와 반복이 내게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그 누구나 생활이 차이와 반복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감동을 느끼는 것일까. 이야기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옥희가 화장실 앞에서 송교수를 보고 화장실에 왜 들어갔을까, 혹은 화장실에서 무엇을 했을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은 송교수일텐데 영화를 찍은 시점은 누구랑 만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무미 건조하게 나레이션하는 그 목소리처럼 아마도 나의 일상 속 차이와 반복은 건조할지도 모른다.
결혼 후에는 확실히 차이보다는 반복의 비율이 많아졌다. 그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목표가 멀어지는 것이다. 아핏차퐁 영화를 보고, 정성일씨의 글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게 생겼지만 언제 이룰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새로운 가족이라는 사회에 들어가며 지켜야 하는 약속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청춘이 좋다는 것이고 그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 불과 서른 중반에 나의 가능성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하나의 명제가 드러났다. 젊은, 혹은 어린 누군가 결혼을 빨리 해야 하는가 늦게 해야 하는가를 물어본다면 그건 사람 나름이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늦게 해야 한다 가 확고한 나의 대답이 되었다는 것.(아마 또 다른 것도 있을 듯 싶기는 하다)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를 찍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그것이 이제 더이상 영화를 찍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부족하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상황이다. 나는 아직 세상을 끌어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혹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자신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남을 끌어안을 수 있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다. 아마도 이 명제가 거짓이지 않는 한 내가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아무리 잘해도 겉만 번드르한 영화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우울한 현재 진행형의 삶에서 그나마 희망 비슷한 것을 찾자면 다짐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해이한 마음가짐에 더 단단한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명제의 다른 버젼. 내가 변해야 자식이 변한다.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 그것을 이제는 믿으므로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또 다르게 생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바뀌기. 또 다시 돌아간 차이와 반복. 세상을 끌어안을 만한 사람이 아닌 내게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 아까와는 반대로 그 속에 감동이 언젠가는 있을 것이라는 상상.
그건 오로지 스스로의 거짓없는 노력이다.
지난 주에는 옥희의 영화와 엉클분미를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만한 건 앞으로 영화에 대해 글을 잘 쓰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데 있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말과 글로 옮김에 있어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건 고스란히 나자신을 향한 글이어야 한다.(아마 거의 아무도 보지는 않았겠지만)
옥희는 마지막에 반복과 차이를 영화로 옮겨보고 싶었고, 결국 영화로 만들었으나 관객인 나는 그 차이와 반복을 고스란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만 했지 그로 인한 그 무엇도 느끼기 힘들었다. 이선균이 결혼한 후에 옥희가 살았던 곳에서 살고있고, 송교수 또한 학교에서 혹은 아차산에서 수없이 차이와 반복을 경험하지만 그들은 나와 같을 뿐이다. 그 차이와 반복이 내게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그 누구나 생활이 차이와 반복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감동을 느끼는 것일까. 이야기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옥희가 화장실 앞에서 송교수를 보고 화장실에 왜 들어갔을까, 혹은 화장실에서 무엇을 했을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은 송교수일텐데 영화를 찍은 시점은 누구랑 만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무미 건조하게 나레이션하는 그 목소리처럼 아마도 나의 일상 속 차이와 반복은 건조할지도 모른다.
결혼 후에는 확실히 차이보다는 반복의 비율이 많아졌다. 그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목표가 멀어지는 것이다. 아핏차퐁 영화를 보고, 정성일씨의 글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게 생겼지만 언제 이룰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새로운 가족이라는 사회에 들어가며 지켜야 하는 약속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청춘이 좋다는 것이고 그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 불과 서른 중반에 나의 가능성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하나의 명제가 드러났다. 젊은, 혹은 어린 누군가 결혼을 빨리 해야 하는가 늦게 해야 하는가를 물어본다면 그건 사람 나름이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늦게 해야 한다 가 확고한 나의 대답이 되었다는 것.(아마 또 다른 것도 있을 듯 싶기는 하다)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를 찍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그것이 이제 더이상 영화를 찍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부족하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상황이다. 나는 아직 세상을 끌어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혹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자신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남을 끌어안을 수 있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다. 아마도 이 명제가 거짓이지 않는 한 내가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아무리 잘해도 겉만 번드르한 영화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우울한 현재 진행형의 삶에서 그나마 희망 비슷한 것을 찾자면 다짐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해이한 마음가짐에 더 단단한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명제의 다른 버젼. 내가 변해야 자식이 변한다.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 그것을 이제는 믿으므로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또 다르게 생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바뀌기. 또 다시 돌아간 차이와 반복. 세상을 끌어안을 만한 사람이 아닌 내게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 아까와는 반대로 그 속에 감동이 언젠가는 있을 것이라는 상상.
그건 오로지 스스로의 거짓없는 노력이다.
25 August, 2010
근황
지난 포스트가 7월 말이니 1달이 넘었다. 이사도 하고 바쁜 것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블로깅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 듯.
나에게 블로깅이 결국 스트레스 해소 혹은 배설인 것은 분명하다. 정보를 모아두는 블로그도 따로 있고, 트윗을 많이 보다보니 블로깅의 장단점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우선 엄청난 정보량에 대해 습득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이 또다른 정보가 쌓여간다. 역시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이들이 같이 배설하고 있다는 사실(트위터에서)에 내가 굳이 배설해야 할 필요를 조금 잃었다. 또 지쳤다. 아직 2년도 더 남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으로도 벅차다. 그걸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혹은 그런 모든 일들에 대해 배설할 자신이 없다) 결국 블로깅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생각하는 것을 머리속에서 정리하고 140자 이내로 줄여보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그리고 트윗은 두번다시 검색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고 쉽게 검색하기도 어렵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다. 역시 트윗은 시의성이 중요하다. 내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1. 어젯밤에 1Q84 3권을 다 읽었다. 스토리는 흥이 나지만 읽으면서 재미,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스릴 넘치는 헐리웃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책을 잘 안읽는 초보독서가의 입장에서 구성의 변화가 의아했고, 주인공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에서 나는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키를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헐리웃 느낌이었다. 옛 책과는 다른 느낌. 내가 변한 건 당연하다. 그리고 분명히 하루키도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하루키를 욕하기로 했다. 아마 나와 같이 모든 사람은 간사하지 않을까.
2.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정은임씨가 떠올랐다. 그가 언젠가 라디오에서 했던 이야기. 요절한 사람이 그리운 건 더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던 말.
3. 오늘은 무슨 일이지 모르게 9월의 첫날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남아 있다. 아마도 생일이 추석과 같은 날이라서 그런 것같다. 그것 외에는 알 수 없다. 찾아봤더니 이런 달은 91년도 이후 처음이다. 내 인생에 있어 두번째의 추석생일날. 성인으로서 첫번째의 추석생일날. 생일날에 선물받는거 어색한 사람인데 지난 달 귀걸이를 웍샵에서 잃어버려 선수금 받듯이 먼저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닥 기대할 것도 없다. 여튼. 태풍이 서울 통과하는 9월의 첫날.
나에게 블로깅이 결국 스트레스 해소 혹은 배설인 것은 분명하다. 정보를 모아두는 블로그도 따로 있고, 트윗을 많이 보다보니 블로깅의 장단점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우선 엄청난 정보량에 대해 습득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이 또다른 정보가 쌓여간다. 역시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이들이 같이 배설하고 있다는 사실(트위터에서)에 내가 굳이 배설해야 할 필요를 조금 잃었다. 또 지쳤다. 아직 2년도 더 남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으로도 벅차다. 그걸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혹은 그런 모든 일들에 대해 배설할 자신이 없다) 결국 블로깅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생각하는 것을 머리속에서 정리하고 140자 이내로 줄여보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그리고 트윗은 두번다시 검색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고 쉽게 검색하기도 어렵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다. 역시 트윗은 시의성이 중요하다. 내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1. 어젯밤에 1Q84 3권을 다 읽었다. 스토리는 흥이 나지만 읽으면서 재미,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스릴 넘치는 헐리웃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책을 잘 안읽는 초보독서가의 입장에서 구성의 변화가 의아했고, 주인공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에서 나는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키를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헐리웃 느낌이었다. 옛 책과는 다른 느낌. 내가 변한 건 당연하다. 그리고 분명히 하루키도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하루키를 욕하기로 했다. 아마 나와 같이 모든 사람은 간사하지 않을까.
2.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정은임씨가 떠올랐다. 그가 언젠가 라디오에서 했던 이야기. 요절한 사람이 그리운 건 더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던 말.
3. 오늘은 무슨 일이지 모르게 9월의 첫날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남아 있다. 아마도 생일이 추석과 같은 날이라서 그런 것같다. 그것 외에는 알 수 없다. 찾아봤더니 이런 달은 91년도 이후 처음이다. 내 인생에 있어 두번째의 추석생일날. 성인으로서 첫번째의 추석생일날. 생일날에 선물받는거 어색한 사람인데 지난 달 귀걸이를 웍샵에서 잃어버려 선수금 받듯이 먼저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닥 기대할 것도 없다. 여튼. 태풍이 서울 통과하는 9월의 첫날.
12 July, 2010
히말라야 커피로드
지난 주 EBS에서 다큐프라임 코너에 히말라야 커피로드를 했다. 김미화의 목소리에 솔깃하여 계속 보게 되었다. 네팔의 산골 마을에서 커피를 제배하는데 그 이야기이다. 혹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다큐가 굉장히 새로웠던 이유는 첫째 다큐 제작하는 것을 자원봉사로 했다는 것. 자세히는 모르지만 PD를 포함한 카메라맨이나 통역 등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내놓는 것으로 봉사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가 저 먼 히말라야의 커피가 주인공의 등을 타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와, 내가 마음먹는다면 TV에서 보던 그들이 만든 커피를 내가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IPTV니 양방향 소통이니 해도 이런 소통만큼 짜릿한 것은 없으리라.
사흘간 그들의 이야기에 눈물 글썽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보았던, 그들이 만든 커피를 내가 마실 수 있다는 건 특별하다. 한달에 몇푼 안되는 돈을 기부를 하고 있던 중 날아온 어린 꼬마의 편지와 같은 것이다.
한 번 그 커피를 마시러 나가봐야겠다.
30 June, 2010
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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