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November, 2010

계피

계피를 알게 된건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을 들으면서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우리나라 밴드 실력은 다 수준급인데 보컬이 없다고. 그 와중에 계피의 목소리는 신선했다. 게다가 그 가사는 어떠한가. 81~85년 생들로 이루어진 밴드만의 솔직함이 너무 좋았다. 얼마전 브로콜리 너마저 2집이 발매되었으나 계피는 이미 없었다. 작년에 발표된 브로콜리 빵마저를 구입하고 나서 느낀 실망은 컸다(미안!). 더이상 계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곡의 완성도 보다는 계피없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그 색을 잃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얼마 전(10월초) 우클렐레피크닉에서 계피가 노래한 것을 알고 앨범을 구입했는데 그러고난 한달 후 가을방학이라는 밴드로 계피가 나타났다. 알고보니 우클렐레 피크닉은 우클렐레(기타와 비슷한 하와이 전통악기)를 이용해 음악을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받은 따끈한 CD를 지난 주말에 몇번 들었는데 역시 계피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흡사 브로콜리너마저를 떠올릴 법 했다.
그리고 어찌하여 브로콜리너마저 2집의 타이틀곡인 졸업도 듣게 되었다.(세상에 인디밴드가 멜론 순위에 들어오다니!)
졸업은 참 좋았다. 그건 그 가사때문이다. 1집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다만 그들은 2살을 더 먹었다. '2009년의 시간들'에서, 그들은 꿈꾸던 2009년이 다가왔지만(아마도 성인이 되는 해) 두려움이 그득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이제는 다시 졸업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버스에서 졸다가 눈을 떴을 때만큼 시간이 휙 지나가버린 때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다. 역시나 시간은 흐를 것이고, 부디 그들이 미친 세상에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기 바라는 마음이다. 아쉬운 것은 역시나 보컬인데 당연히 계피의 빈자리가 크다. 같이 부른 이에게는 미안하지만(아마도 잔디?) 계피가 졸업을 같이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그리고 내 꿈은 더 나이가 2년 후 브로콜리너마저의 세번째 앨범에서의 계피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계피는 가을방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솔직히 난 그 가사와 계피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 그저 흘려듣는 음악으로서의 감상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지만 곱씹어 듣는다면 역시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동거'나 '속아도 꿈결'을 제외한 나머지 노래의 가사가 모두 사랑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사가 나쁘다거나 사랑 노래가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계피의 목소리와 헤어진 후에 가끔 미치도록 안고 싶어지는 마음과, 봉별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직도 계피의 목소리는 브로콜리너마저 1집의 그것과 같다. 그건 이미 내게 아직 세상에 나가기 전의 목소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다음 앨범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계피의 노래가 이제는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 다음에 "속아도 꿈결"을 부를 때는 지금과는 다르기를 바란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게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금홍이가 부른 창가처럼 계피의 사랑 목소리가 듣고 싶다.

http://autumnvacat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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