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land Riots Precursor To U.S. Civil Unrest?
Demonstrators call for government to resign in wake of financial collapsePaul Joseph Watson
Prison Planet.com
Tuesday, November 25, 2008
Riots and protests in Reykjavik calling for the government of Iceland to resign have increased following a financial catastrophe that has wiped out half of the krona’s value and put one third of the population at risk of losing their homes and life savings. Could similar scenes of civil unrest be repeated in the United States as the economy continues to implode?
“It was the latest in a series of protests in the capital since October’s banking collapse crippled the island’s economy. At least five people were injured and Hordur Torfason, a well-known singer in Iceland and the main organiser of the protests, said the protests would continue until the government stepped down,” reports the Scotsman.
As crowds gathered in the drizzle before the Althing, the Icelandic parliament, on Saturday, Mr Torfason said: “They don’t have our trust and they are no longer legitimate.”
Hundreds more gathered in front of a local police station, pelting eggs at the windows, using a bettering ram to force the doors open and demanding the release of a protester.
A banner hung from a government building read “Iceland for Sale: $2,100,000,000,” the amount of the loan the country will receive from the IMF.
Gudrun Jonsdottir, a 36-year-old office worker, said: “I’ve just had enough of this whole thing. I don’t trust the government, I don’t trust the banks, I don’t trust the political parties, and I don’t trust the IMF.
“We had a good country and they ruined it.”
These aren’t the actions of unwieldy mobs in third world countries, we’re talking about a country that had one of the highest living standards in Europe and a relatively wealthy and sedate population, the vast majority of whom are now in revolt over mass redundancies and the fast disappearing values of their paychecks and savings.
More peaceful protests against the Federal Reserve during the End the Fed events over the weekend were largely ignored by the U.S. corporate media, but the potential for wider chaos exists should the dollar finally cave in to the hyperinflationary bubble that is being created by the ceaseless printing of money to fund the multi-trillion dollar bailout.
Those who continue to assert, “It can’t happen here,” only need to look at the scenes in Reykjavik to realize that similar events could unfold across the U.S., where the reaction of militarized riot cops and even the military itself may be a little more heavy handed to say the least.
With top Russian analysts predicting the breakup of the U.S. into different parts, allied with people like deadly accurate trends forecaster Gerald Celente warning of food riots and tax rebellions, the scenes in Reykjavik may be amplified in the U.S. should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public wake up to the monumental fraud of the bailout and begin to feel the impact of its consequences as we enter 2009.
ps. Its about time to protest again for ourselves.
nowadays.. these are almost about fuckin politics or economy of Korea and a few about films, travels, and my life
26 November, 2008
25 November, 2008
중경. 이리.
장률의 장편영화가 2편이나 개봉했다.
당시, 망종, 경계, 그리고 중경과 이리. 돌아보니 장률의 모든 영화를 보았다. 중경과 이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는 한 편에 담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2편으로 나누어 개봉했다고 한다. 나는 중경을 보고 이리를 보았다. 중경이 먼저 개봉해서 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리부터 보길 감독은 원했다.(아래 인터뷰 참고)
그러나 저러나 지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중경과 이리 모두 어렵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2편을 보았고, 그 중 이리가 나중에 본 영화라 그런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중경보다 많다. 시간이 허락한다면야 다시금 보고 싶지만....
이번의 두 영화도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이 담겨 있다. 한 공간에 다른 국적의 사람이 들어와서 벌어지는 일들. 그건 여기저기 이야기하는 감독의 정체성과도 관련있을 게다.
어쨌거나 이 두 영화를 이해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쓰긴 해야겠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
기억나는 몇몇 장면 혹은 인과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 정리가 어떨까. ㅋ. 치사한 방법이지만 나름대로 이 영화를 기억해내기 위한 글로는 적당할 듯 싶다.
깨나 집중해서 보았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마지막 경찰소장이 옷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 딱 보면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왜? 전 scene에서 소장이 호텔 침대에 왠 인형과 함께 엎드려 있고 쑤이가 느닷없이 나타났는데 총을 돌려달라면서 운다. 중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총을 가지고 있던 쑤이가 소장을 다시 보고 싶어서 호텔로 간 것일까? 다시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솔직히 꿈같은 느낌이다. 소장이 다시 일어나 인형을 끌어안는 모습에서 쑤이를 보지 못한 채 위로받는 모습일까.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쑤이가 정말 그의 어머니를 닮았다면? 총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불안감이 그렇게 표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매우 현실적으로 사람을 잡아내는 감독의 카메라와 배우의 연기가 그랬다. 계속 트래킹을 하며 앞서가는 모습에서 그는 미쳤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을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장면이 현실적임은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는 중경의 모습이기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장면이 이리에서 할아버지의 죽음 장면을 이어진다는 느낌이다. 이리와 중경이 많은 부분에서 대구인 것도 그렇다. 게다가 장률 감독은 사람의 죽는 장면을 보여주는 감독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김치에 독약을 탄 후에 우리는 경찰차가 결혼식장으로 가는 것에서 죽음을 알 수 있고, 아이가 아닌 전깃줄에 걸려있는 연을 통해 죽음을 알 수 있다. 집과 땅을 돌려달라던 사람의 자살은 또 어떠한가. 더욱 확신이 가는 부분은 소장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고 난 뒤의 장면이다. 쑤이가 새로 산 선인장에 팔을 누르는 자해 장면. 이리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본 진서의 다음 scene은 진서가 터널에서 스스로 뺨을 때리는 장면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물론 두 영화가 그 부분에 있어 대구라는 가정하에만, 아까 내가 의심을 품었던 장면을 다시 생각해볼 겨를이 생겼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을 매기 전날 밤 할아버지는 진서에게 다가가 흑심을 품지만 이내 주저앉아버린다. 그런 할아버지를 두고 진서는 그대로 돌아선다. 쑤이는 소장이 그리워갔지만 총을 돌려주지 않은 채 떠나간다. 그럼 이제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중경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혹은 이리, 지금의 익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물론 중경이나 익산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익산사는 친구가 떠올랐음 ㅠ.ㅜ)
이리에는 이해못할 내용들이 너무 많다. 느닷없이 익산역에 나타나 태웅과 같이 노래방을 가는 여자, 할아니의 "니나노~' 하는 장면, 이 장면은 어찌보면 중경의 인터네셔널가를 부르며 걸어가는 노인들과도 같이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씬에 나타나지만 경로당의 할머니를 찾아오는 할아버지. 또 태웅은 진서를 죽인 것일까. 결국 마지막 질문. 진서는 과연 죽은 것일까.
이 대답을 내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몇번을 봐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가진 채 나는 장률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었다. 씨네21 637호, "장률이 이리로 떠난 까닭은? 영화평론가 정성일, 장률 감독의 신작 <이리> 촬영현장에 가다"
여기서 충분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일이지요. 이런 기회가 생기니까 하는 거고, 꼭 한국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고민한 적은 없어요. 95년에 처음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많이 다녔어요. 영화 현장도 다녀가보고, 심지어 영화찍는 도중에 대통령 선거도 보고, 어떻게 보면 자기 집 일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 한국사회,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을 지금 영화를 만들면서 공부하고 있는거지요. 이번 영화에는 그런 자세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리, 익산편)은 이제까지 어느 영화보다 긴장하고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스탭들에게 물어봐요.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가? 제일 근심이 그것이지요. 어떤 영화를 보면 한국사람이 찍어도 한국 사람의 생활이 아니다, 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영화에 생활이 묻어나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근본부터 아닌 셈이니 가장 나쁜 일이지요. 이 영화의 일순휘는 한국 사람의 영화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전통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영화를 하기 전에 본 한국영화는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 민족의 감정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은 (임권택의) 서편제 입니다. 이야기도 감동이 되었지요. 저에게 한국은 피(血녹) 이전에 어떻게 보면 민족, 이런 것은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기억이잖습니까? 할아버지, 아버지,이렇게 이어가는 끈, 나라라는 것은 정치이고, 국적이라는 것도 정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어가는 기억 속에 나도 오늘 있었고, 그 속에서 기억은 정말 너무 소중하잖아요. 외할머니에게서 한국 이야기, 특히 심청전 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신기합니다. 어머니는 16살에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더 많은 기억을 갖고 계셨지요. 아버지는 (경상북도) 의성이 고향이고, 어머니 고향은 (경상북도) 영덕입니다. 지난번에 위성에 가보았는데 지금도 이렇게 가기 힘든데 어떻게 그때는 걸어서 만주 벌판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제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주 어떤 착각이 들어요. 만일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나도 여기서,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리 폭발사고가 나던 그날 그 장소에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중국과 한국을 오가다보면 아주 철정하게 말한다면, 거기나 여기나 생각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이 비슷해요.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한국이라는 생활을 묻어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가 묻어날 것입니다. 그 방법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매 장면, 매 순간 자꾸 반성해야지요. 결국 질문은 하나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냐하면 사람의 생활이란 거의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저는 망종 과 다르지만 같은 대답을 찾을 것입니다. 그 대답을 찾아가는 벙법을 영화가 기록할 때, 거기에 생활이 묻어나오고 그 생활을 해야 하는 사회가 묻어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내게는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분'의 마음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 아니 차라리 폭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심정으로 내리지도 못한 채 끌려가다시피 거기 실려가고 있다는 기분을 갖게 됩니다.(그 말을 듣고 내가 그건 한국도 그렇지요. 라고 말하자)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 오면 폭발하고 난 다음의 황폐함, 그래서 폭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아야 하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느끼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시간의 앞과 뒤, 전과 후를 다녀가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이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은 두ㅐ의 장소 때문이 아니라 두개의 시간 때문입니다. 이제 겪어야 할 시간을 이미 다른 한쪽은 겪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겪은 것은 벌써 잊어버리고 있을 때, 나는 이제 겪어야 할 쪽을 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보아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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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산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이리, 중경편 을 찍고 난 다음, 이건 정말 자신이 있었지만, 한국편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원칙은 무조건 중격에서 절반, 이리(장률은 익산을 매번 '이리'라고 불렀다. 그는 이 말의 어감을 좋아했다)에서 절반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중경은 무조건 여름에 찍고 이리는 겨울에 찍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중경을 선택한 것은 절대적으로 이리를 선택하고 난 다음의 선택입니다. 말하자면 폭발 이전과 폭발 이후, 사실 중경 사람들의 성격이 그래요. 아주 세요. 중경 샤브샤브는 아주 맵습니다. 날씨도 덥고요. 그런데 여기에, 이 도시에 3천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 금방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심지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무언가 그런 걸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내내 비가 올 듯한 날씨로 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으로 창장강으로 흐르면서 산에 걸린 구름이 이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대도시가 중요했다면 상하이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보자) 아. 상하이는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실 상하이를 무대로 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중경이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인데도 이상하게 여기는 도시의 냄새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하이를 가면 중국이 아니라 '외래문화'로 가득 찬, 말하자면 중국 바깥에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은 진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뭐랄까, 허공에 뜬 도시 같아요. 이 영화는 중경이어야만 합니다. 왜나하면 내부에서 폭발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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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영화의 제목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잠정적으로 이리, 중경편 이라고 불렀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천여자의 노래 라는 제목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편집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모든 것은이 열린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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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蘇) 손생을 연기한 궈커위는 이 영화가 두 번째 출연입니다. 그녀는 중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입니다. 77년생인 그녀는 17살 때 빨간 앵두 라는 영화에서 중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전라의 뒷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그런 다음 영화에 더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록 가수가 되었지요. 나는 그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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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간에 앉아 있으면 거기서 나오는 소리들이 있어요. 후시녹음에서는 감정이 나오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하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요. 그러나 그건 만들어낸 완벽함이지요. 그 말은 완벽하게 원래의 장소가 없어졌다느 ㄴ말이지요. 아는 처음부처 100% 동시녹음을 했어요. 내 영화에 미학이 있다면 그건 소리입니다. 나는 당시 에서 속으로 영화는 소리를 훔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영화는 계속 소리가 침범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지요. 이리, 익산편 에 이르러 비로소 소리가 진서를 통해 소통합니다. 왜? 진서는 천사니까. 아 물론 약간의 폴리를 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대사는 무조건 현장에서 말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내 영화가 좀 썰렁하다고 말을 해요. 인물이 많지 않고, 그래서 전실한 소리를 넣을면 좀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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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리, 익산편 이 가장 넓게 찍고 있는 셈이지요. 제마음이 좁은 데서 점점 넓은 데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는 밀폐된 공간을 다루었고, 망종은 그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지요. 경계 그 그 지역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리, 중경편 에서는 중경이라는 대도시에서 찍었지만 그게 다 파편화된 구역을 돌아다녔지요, 그러면서 점점 나오는 과정을 겪어가고 있습니다. 89년 천안문사건 이후 거의 십년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 백수라고 하지요, 그때는 방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리, 익산편 에서는 익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리, 만물상회, 구둣방, 경로당, 이 모든 것들이 연계가 되어 있어요, 망종 은 한 단락, 한 달락 다른 리듬으로 엮어서 보여주었다면, 익산은 공간 자체가 완전해요. 여기는 시작하고, 가고, 떠나고, 도착하는 곳이지요. 기차를 발명한 사람은 아주 멋있는 사람일 거예요. 떠나고, 도착하고, 그런데 그 속에서 오로지 진서만이 그 공간을 떠나지 않고 계속 있어요, 진서가 사람들을 만날 때. 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찍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람들간의 거리가 좀 멀어요. 한국은 정이 많고 관심이 많지만, 중국은 냉정하고 무관심하지요. 당시 나 망종 은 중국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저처럼 바깥에서 온 사람에게 한국 사람들은 거리감이 거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느껴집니다. 한국 택시를 타면 기사아저씨들이 마치 삼촌처럼 짜증을 내요. 막 함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속내도 털어놓고 중국에서 택시를 타면 아무 말 없이 목적지까지 갑니다.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통역을 해보면 친척 감정이에요. 제 생각에는, 어떤 공간에는 감정, 사람의 몸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정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인물과 인물의 거리,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결정한다고 밎습니다. 저는 그걸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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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면과 화면을 계속 붙이지 않습니까? 이 안에 리듬이 있습니다. 화면 안에 또 다른 리듬이 있고, 더 큰 리듬이 계쏙 생각을 만들고, 그것을 맞춰넣어야 합니다. 저는 영화에서 리듬, 아니 차라리 호흡이 이유없이 깨지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호흡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깨지면 부끄러울 것 같아요. 특히 나는 한컷의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걸 심어놓지 않고 리듬이 깨지면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일단 카메라를 세운 다음 사람을 움직여서 리듬을 만듭니다.그러다가 정말 더이상 방법이 없을 때 카메라가 움직이지요. 원칙을 깨트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때, 망종 은 마지막에 카메라가 쫓아가고, 경계 는 마지막에 360도로 팬을 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마지막까지 버텨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리, 익산편 에서는 중간에 핸드헬드가 나옵니다. 할아버지가 자살하고 난 다음, 진서가 터널을 걸어갈 때, 사람을 구하는 데 실패한 천사가 걸어갈 때, 천사가 흔들리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원칙을 지키자면 고정으로 찍어야 했어요. 근데 깨버렸습니다. 절대로 중간에 넣는 걸 일부러 시도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시도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건 그럴수 밖에 없을 때, 그래서 요구할 때, 거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탭들도 동의를 했어요.
...
(그래도 질문을 했다. 두 편 중에 어느 쪽을 먼저 보는 것이 당신의 의도입니까?)
그것은 이리, 익산편 이지요,(그는 이 말을 단호하게 했다) 왜냐하면 작가는 마지막에서 앞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고, 관객에게는 그것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서대로 주지 않으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어떤 영화들처럼 고의적으로 거꾸로 주는 것은 싫습니다. 친절하게 순서대로 주는 것이 옳지요.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자꾸 생각합니다. 이리라는 데를 떠나서 또 가는 것, 이 사람의 마음을 나도 똑같이, 이 사람이 지금의 시점에서 가질 마음가짐들, 만일 경계 를 이리, 중경편 처럼 찍었다면 몽골을 찍고, 평양을 찍어야 제대로 나왔겠지요. 창작자의 출발점과 관객의 출발점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두 영화는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디 갔던 과정을 돌아보는 과정이 양쪽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그 순서는 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ps. 퍼올 수가 없어서 직접 타이핑을 했다. 페이지로 자그만치 21페이지 분량이었다. 나는 정성일 씨의 글을 모두 옮길 수가 없었다. 검색에 능한 분은 웹으로 찾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며, 이번에 내가 본 영화와 크게 상관없는 인터뷰의 내용은 나름 생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경과 이리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듯 보인다. 올해초 읽었을 때는 공감하지 못한 내용이기도 했다.
당시, 망종, 경계, 그리고 중경과 이리. 돌아보니 장률의 모든 영화를 보았다. 중경과 이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는 한 편에 담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2편으로 나누어 개봉했다고 한다. 나는 중경을 보고 이리를 보았다. 중경이 먼저 개봉해서 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리부터 보길 감독은 원했다.(아래 인터뷰 참고)
그러나 저러나 지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중경과 이리 모두 어렵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2편을 보았고, 그 중 이리가 나중에 본 영화라 그런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중경보다 많다. 시간이 허락한다면야 다시금 보고 싶지만....
이번의 두 영화도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이 담겨 있다. 한 공간에 다른 국적의 사람이 들어와서 벌어지는 일들. 그건 여기저기 이야기하는 감독의 정체성과도 관련있을 게다.
어쨌거나 이 두 영화를 이해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쓰긴 해야겠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
기억나는 몇몇 장면 혹은 인과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 정리가 어떨까. ㅋ. 치사한 방법이지만 나름대로 이 영화를 기억해내기 위한 글로는 적당할 듯 싶다.
깨나 집중해서 보았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마지막 경찰소장이 옷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 딱 보면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왜? 전 scene에서 소장이 호텔 침대에 왠 인형과 함께 엎드려 있고 쑤이가 느닷없이 나타났는데 총을 돌려달라면서 운다. 중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총을 가지고 있던 쑤이가 소장을 다시 보고 싶어서 호텔로 간 것일까? 다시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솔직히 꿈같은 느낌이다. 소장이 다시 일어나 인형을 끌어안는 모습에서 쑤이를 보지 못한 채 위로받는 모습일까.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쑤이가 정말 그의 어머니를 닮았다면? 총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불안감이 그렇게 표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매우 현실적으로 사람을 잡아내는 감독의 카메라와 배우의 연기가 그랬다. 계속 트래킹을 하며 앞서가는 모습에서 그는 미쳤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을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 장면이 현실적임은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는 중경의 모습이기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장면이 이리에서 할아버지의 죽음 장면을 이어진다는 느낌이다. 이리와 중경이 많은 부분에서 대구인 것도 그렇다. 게다가 장률 감독은 사람의 죽는 장면을 보여주는 감독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김치에 독약을 탄 후에 우리는 경찰차가 결혼식장으로 가는 것에서 죽음을 알 수 있고, 아이가 아닌 전깃줄에 걸려있는 연을 통해 죽음을 알 수 있다. 집과 땅을 돌려달라던 사람의 자살은 또 어떠한가. 더욱 확신이 가는 부분은 소장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고 난 뒤의 장면이다. 쑤이가 새로 산 선인장에 팔을 누르는 자해 장면. 이리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본 진서의 다음 scene은 진서가 터널에서 스스로 뺨을 때리는 장면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물론 두 영화가 그 부분에 있어 대구라는 가정하에만, 아까 내가 의심을 품었던 장면을 다시 생각해볼 겨를이 생겼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을 매기 전날 밤 할아버지는 진서에게 다가가 흑심을 품지만 이내 주저앉아버린다. 그런 할아버지를 두고 진서는 그대로 돌아선다. 쑤이는 소장이 그리워갔지만 총을 돌려주지 않은 채 떠나간다. 그럼 이제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중경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혹은 이리, 지금의 익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물론 중경이나 익산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익산사는 친구가 떠올랐음 ㅠ.ㅜ)
이리에는 이해못할 내용들이 너무 많다. 느닷없이 익산역에 나타나 태웅과 같이 노래방을 가는 여자, 할아니의 "니나노~' 하는 장면, 이 장면은 어찌보면 중경의 인터네셔널가를 부르며 걸어가는 노인들과도 같이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씬에 나타나지만 경로당의 할머니를 찾아오는 할아버지. 또 태웅은 진서를 죽인 것일까. 결국 마지막 질문. 진서는 과연 죽은 것일까.
이 대답을 내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몇번을 봐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가진 채 나는 장률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었다. 씨네21 637호, "장률이 이리로 떠난 까닭은? 영화평론가 정성일, 장률 감독의 신작 <이리> 촬영현장에 가다"
여기서 충분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일이지요. 이런 기회가 생기니까 하는 거고, 꼭 한국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고민한 적은 없어요. 95년에 처음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많이 다녔어요. 영화 현장도 다녀가보고, 심지어 영화찍는 도중에 대통령 선거도 보고, 어떻게 보면 자기 집 일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 한국사회,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을 지금 영화를 만들면서 공부하고 있는거지요. 이번 영화에는 그런 자세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리, 익산편)은 이제까지 어느 영화보다 긴장하고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스탭들에게 물어봐요.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가? 제일 근심이 그것이지요. 어떤 영화를 보면 한국사람이 찍어도 한국 사람의 생활이 아니다, 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영화에 생활이 묻어나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근본부터 아닌 셈이니 가장 나쁜 일이지요. 이 영화의 일순휘는 한국 사람의 영화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전통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영화를 하기 전에 본 한국영화는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 민족의 감정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은 (임권택의) 서편제 입니다. 이야기도 감동이 되었지요. 저에게 한국은 피(血녹) 이전에 어떻게 보면 민족, 이런 것은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기억이잖습니까? 할아버지, 아버지,이렇게 이어가는 끈, 나라라는 것은 정치이고, 국적이라는 것도 정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어가는 기억 속에 나도 오늘 있었고, 그 속에서 기억은 정말 너무 소중하잖아요. 외할머니에게서 한국 이야기, 특히 심청전 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신기합니다. 어머니는 16살에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더 많은 기억을 갖고 계셨지요. 아버지는 (경상북도) 의성이 고향이고, 어머니 고향은 (경상북도) 영덕입니다. 지난번에 위성에 가보았는데 지금도 이렇게 가기 힘든데 어떻게 그때는 걸어서 만주 벌판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제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주 어떤 착각이 들어요. 만일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나도 여기서,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리 폭발사고가 나던 그날 그 장소에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중국과 한국을 오가다보면 아주 철정하게 말한다면, 거기나 여기나 생각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이 비슷해요.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한국이라는 생활을 묻어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가 묻어날 것입니다. 그 방법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매 장면, 매 순간 자꾸 반성해야지요. 결국 질문은 하나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냐하면 사람의 생활이란 거의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저는 망종 과 다르지만 같은 대답을 찾을 것입니다. 그 대답을 찾아가는 벙법을 영화가 기록할 때, 거기에 생활이 묻어나오고 그 생활을 해야 하는 사회가 묻어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내게는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분'의 마음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 아니 차라리 폭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심정으로 내리지도 못한 채 끌려가다시피 거기 실려가고 있다는 기분을 갖게 됩니다.(그 말을 듣고 내가 그건 한국도 그렇지요. 라고 말하자)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 오면 폭발하고 난 다음의 황폐함, 그래서 폭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아야 하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느끼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시간의 앞과 뒤, 전과 후를 다녀가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이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은 두ㅐ의 장소 때문이 아니라 두개의 시간 때문입니다. 이제 겪어야 할 시간을 이미 다른 한쪽은 겪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겪은 것은 벌써 잊어버리고 있을 때, 나는 이제 겪어야 할 쪽을 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보아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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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산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이리, 중경편 을 찍고 난 다음, 이건 정말 자신이 있었지만, 한국편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원칙은 무조건 중격에서 절반, 이리(장률은 익산을 매번 '이리'라고 불렀다. 그는 이 말의 어감을 좋아했다)에서 절반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중경은 무조건 여름에 찍고 이리는 겨울에 찍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중경을 선택한 것은 절대적으로 이리를 선택하고 난 다음의 선택입니다. 말하자면 폭발 이전과 폭발 이후, 사실 중경 사람들의 성격이 그래요. 아주 세요. 중경 샤브샤브는 아주 맵습니다. 날씨도 덥고요. 그런데 여기에, 이 도시에 3천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 금방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심지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무언가 그런 걸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내내 비가 올 듯한 날씨로 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으로 창장강으로 흐르면서 산에 걸린 구름이 이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대도시가 중요했다면 상하이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보자) 아. 상하이는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실 상하이를 무대로 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중경이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인데도 이상하게 여기는 도시의 냄새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하이를 가면 중국이 아니라 '외래문화'로 가득 찬, 말하자면 중국 바깥에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은 진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뭐랄까, 허공에 뜬 도시 같아요. 이 영화는 중경이어야만 합니다. 왜나하면 내부에서 폭발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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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영화의 제목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잠정적으로 이리, 중경편 이라고 불렀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천여자의 노래 라는 제목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편집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모든 것은이 열린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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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蘇) 손생을 연기한 궈커위는 이 영화가 두 번째 출연입니다. 그녀는 중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입니다. 77년생인 그녀는 17살 때 빨간 앵두 라는 영화에서 중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전라의 뒷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그런 다음 영화에 더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록 가수가 되었지요. 나는 그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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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간에 앉아 있으면 거기서 나오는 소리들이 있어요. 후시녹음에서는 감정이 나오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하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요. 그러나 그건 만들어낸 완벽함이지요. 그 말은 완벽하게 원래의 장소가 없어졌다느 ㄴ말이지요. 아는 처음부처 100% 동시녹음을 했어요. 내 영화에 미학이 있다면 그건 소리입니다. 나는 당시 에서 속으로 영화는 소리를 훔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영화는 계속 소리가 침범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지요. 이리, 익산편 에 이르러 비로소 소리가 진서를 통해 소통합니다. 왜? 진서는 천사니까. 아 물론 약간의 폴리를 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대사는 무조건 현장에서 말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내 영화가 좀 썰렁하다고 말을 해요. 인물이 많지 않고, 그래서 전실한 소리를 넣을면 좀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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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리, 익산편 이 가장 넓게 찍고 있는 셈이지요. 제마음이 좁은 데서 점점 넓은 데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는 밀폐된 공간을 다루었고, 망종은 그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지요. 경계 그 그 지역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리, 중경편 에서는 중경이라는 대도시에서 찍었지만 그게 다 파편화된 구역을 돌아다녔지요, 그러면서 점점 나오는 과정을 겪어가고 있습니다. 89년 천안문사건 이후 거의 십년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 백수라고 하지요, 그때는 방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리, 익산편 에서는 익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리, 만물상회, 구둣방, 경로당, 이 모든 것들이 연계가 되어 있어요, 망종 은 한 단락, 한 달락 다른 리듬으로 엮어서 보여주었다면, 익산은 공간 자체가 완전해요. 여기는 시작하고, 가고, 떠나고, 도착하는 곳이지요. 기차를 발명한 사람은 아주 멋있는 사람일 거예요. 떠나고, 도착하고, 그런데 그 속에서 오로지 진서만이 그 공간을 떠나지 않고 계속 있어요, 진서가 사람들을 만날 때. 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찍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람들간의 거리가 좀 멀어요. 한국은 정이 많고 관심이 많지만, 중국은 냉정하고 무관심하지요. 당시 나 망종 은 중국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저처럼 바깥에서 온 사람에게 한국 사람들은 거리감이 거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느껴집니다. 한국 택시를 타면 기사아저씨들이 마치 삼촌처럼 짜증을 내요. 막 함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속내도 털어놓고 중국에서 택시를 타면 아무 말 없이 목적지까지 갑니다.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통역을 해보면 친척 감정이에요. 제 생각에는, 어떤 공간에는 감정, 사람의 몸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정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인물과 인물의 거리,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결정한다고 밎습니다. 저는 그걸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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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면과 화면을 계속 붙이지 않습니까? 이 안에 리듬이 있습니다. 화면 안에 또 다른 리듬이 있고, 더 큰 리듬이 계쏙 생각을 만들고, 그것을 맞춰넣어야 합니다. 저는 영화에서 리듬, 아니 차라리 호흡이 이유없이 깨지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호흡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깨지면 부끄러울 것 같아요. 특히 나는 한컷의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걸 심어놓지 않고 리듬이 깨지면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일단 카메라를 세운 다음 사람을 움직여서 리듬을 만듭니다.그러다가 정말 더이상 방법이 없을 때 카메라가 움직이지요. 원칙을 깨트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때, 망종 은 마지막에 카메라가 쫓아가고, 경계 는 마지막에 360도로 팬을 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마지막까지 버텨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리, 익산편 에서는 중간에 핸드헬드가 나옵니다. 할아버지가 자살하고 난 다음, 진서가 터널을 걸어갈 때, 사람을 구하는 데 실패한 천사가 걸어갈 때, 천사가 흔들리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원칙을 지키자면 고정으로 찍어야 했어요. 근데 깨버렸습니다. 절대로 중간에 넣는 걸 일부러 시도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시도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건 그럴수 밖에 없을 때, 그래서 요구할 때, 거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탭들도 동의를 했어요.
...
(그래도 질문을 했다. 두 편 중에 어느 쪽을 먼저 보는 것이 당신의 의도입니까?)
그것은 이리, 익산편 이지요,(그는 이 말을 단호하게 했다) 왜냐하면 작가는 마지막에서 앞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고, 관객에게는 그것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서대로 주지 않으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어떤 영화들처럼 고의적으로 거꾸로 주는 것은 싫습니다. 친절하게 순서대로 주는 것이 옳지요.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자꾸 생각합니다. 이리라는 데를 떠나서 또 가는 것, 이 사람의 마음을 나도 똑같이, 이 사람이 지금의 시점에서 가질 마음가짐들, 만일 경계 를 이리, 중경편 처럼 찍었다면 몽골을 찍고, 평양을 찍어야 제대로 나왔겠지요. 창작자의 출발점과 관객의 출발점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두 영화는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디 갔던 과정을 돌아보는 과정이 양쪽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그 순서는 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ps. 퍼올 수가 없어서 직접 타이핑을 했다. 페이지로 자그만치 21페이지 분량이었다. 나는 정성일 씨의 글을 모두 옮길 수가 없었다. 검색에 능한 분은 웹으로 찾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며, 이번에 내가 본 영화와 크게 상관없는 인터뷰의 내용은 나름 생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경과 이리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듯 보인다. 올해초 읽었을 때는 공감하지 못한 내용이기도 했다.
21 November, 2008
패배주의
패배주의에 대한 정의
1) 알아도 모른 척 한다.
2)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행동한다. 아무것도 못한다.
3) 알고 당하는 것보다 모르고 당하는 게 낫다고 자위한다.
4)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정당하다고 여긴다.
갑자기 왠 패배주의냐고? 지금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 이 나라가 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꼴에 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끔찍한 것 아닐까.
1) 알아도 모른 척 한다.
2)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행동한다. 아무것도 못한다.
3) 알고 당하는 것보다 모르고 당하는 게 낫다고 자위한다.
4)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정당하다고 여긴다.
갑자기 왠 패배주의냐고? 지금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 이 나라가 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꼴에 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끔찍한 것 아닐까.
13 November, 2008
1000 yen per hour!

1000 yen per hour!
Originally uploaded by junsang, stanley, whatever.
At McDonalds,
Could you believe that??
imf 시즌2
정말일까. 그런데 이 정부가 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지금 새벽 1시 넘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재 역외환율은 1387원을 넘겼고 저녁이후 계속 상승 중. 매일 12시 전과 3시전에 쏟아붓던 외환도 오늘은 먹히질 않았다.
북한도 난리. 연기금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올수도 없는 실정.
crs는 마이너스, 은행 bis 발표보니 달랑 8% 넘는 실정. 피치사의 금융권 신용발표는 9월달 bis 기준이라고 하질 않나.
이번주에 한번 길게 정리해봐야겠다. 너무 머리가 아프다.
여튼 오늘이 고비가 되지 않을까.
지금 새벽 1시 넘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재 역외환율은 1387원을 넘겼고 저녁이후 계속 상승 중. 매일 12시 전과 3시전에 쏟아붓던 외환도 오늘은 먹히질 않았다.
북한도 난리. 연기금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올수도 없는 실정.
crs는 마이너스, 은행 bis 발표보니 달랑 8% 넘는 실정. 피치사의 금융권 신용발표는 9월달 bis 기준이라고 하질 않나.
이번주에 한번 길게 정리해봐야겠다. 너무 머리가 아프다.
여튼 오늘이 고비가 되지 않을까.
11 November, 2008
Trip to Japan
Last weekend I was in Tokyo, Japan. it had been for 1 night, 3 days, really tired thing.
its was day-off yesterday I slept all day long.
That trip was decided immediately by Kate, my wife. she found out very cheap fight ticket to Tokyo. those cheap tickets are easy to be found because of financial crisis in Korea. currency is very unstable. the value of Korean won is getting lower and lower. so prices of goods in Tokyo is very high and we was so careful to spend money there.
Feelings in that trip in some words,
1. prices of goods and services are very very high. because of currency.
2. weekend abroad trip is very very exhausted.
3. Tokyo is the same as when i was there before, 2005.
in this week i will post my photos in my flickr.
its was day-off yesterday I slept all day long.
That trip was decided immediately by Kate, my wife. she found out very cheap fight ticket to Tokyo. those cheap tickets are easy to be found because of financial crisis in Korea. currency is very unstable. the value of Korean won is getting lower and lower. so prices of goods in Tokyo is very high and we was so careful to spend money there.
Feelings in that trip in some words,
1. prices of goods and services are very very high. because of currency.
2. weekend abroad trip is very very exhausted.
3. Tokyo is the same as when i was there before, 2005.
in this week i will post my photos in my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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